그림으로 읽는 폴란드의 열두 달과 전통
1월부터 12월까지, 한 해의 흐름 속에서 폴란드인들은 어떤 전통을 지켜왔을까요? 고전 폴란드 화가들이 남긴 그림을 따라가며, 폴란드의 달력 속에서 기독교적 전통과 이교적 관습, 세속적 요소들이 어떻게 서로 어우러져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는지를 살펴봅니다.
1월: 캐럴 행렬 '콜렝도바니에 Kolędowa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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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캐럴 행렬 Kolędnicy noworoczni》(1900) / 미하우 엘비로 안드리올리 Michał Elwiro Andriolli / 지그문트 글로게르 Zygmunt Gloger 《삶에서 만나는 폴란드의 한 해, 삶과 전통, 노래 Rok polski w życiu, tradycyi i pieśni》 수록 일러스트 / 1900 / 사진: 국립도서관 폴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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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면 폴란드에서는 사람들이 황새, 곰, 염소, 혹은 '투론 Turoń'으로 분장한 채 집집마다 찾아다닙니다. 이러한 방문은 고대 슬라브 문화에서 기원한 '콜렝도바니에'라 불리는 캐럴 행렬 전통의 일부로,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행렬에 참여한 이들은 각 가정을 돌며 캐럴을 부르고 노래와 연극적인 몸짓을 곁들여 다가올 한 해의 풍요와 번영을 기원했으며, 그에 대한 답례로 음식이나 소액의 돈을 받곤 했습니다. 이 의식은 동물 가면과 노래가 어우러진 공동체적 축제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새해를 맞이하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행렬 속에서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는 수북한 검은 털과 뿔을 지니고 입을 크게 벌린 상상의 동물 '투론'입니다. 투론은 다산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시에 혼돈과 재생의 의미를 함께 품은 존재로, 기독교 이전 이교적 세계관의 흔적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화가 미하우 엘비로 안드리올리 Michał Elwiro Andriolli의 삽화 속에도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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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릭: 리투아니아 산나》(1883) / 알프레트 비에루시-코발스키 / 사진: Agra-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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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주님 공현 대축일, 즉 동방박사의 날인 1월 6일부터 재의 수요일까지 폴란드에서는 '자푸스티 zapusty', 또는 '카르나바우 karnawał'라 불리는 카니발 기간이 이어집니다. 연회와 무도회 같은 즐거운 행사가 카니발을 이루는 중요한 특징이지만, 폴란드 카니발을 가장 아름답게 특징짓는 전통은 '산나 sanna'라고도 불리는 전통 썰매 놀이 '쿨릭 kulig'입니다.
쿨릭은 주로 카니발의 마지막 주에 열리던 행사로, 특히 폴란드 상류층 사이에서 사랑받았던 겨울 놀이였습니다. 눈 덮인 풍경 속을 달리는 귀족들의 썰매 행렬은 화가 알프레트 비에루시-코발스키 Alfred Wierusz-Kowalski의 작품 《쿨릭: 리투아니아 산나 Kulig. Litewska sanna》에서도 인상적으로 묘사됩니다. 전통적인 쿨릭에는 말이 이끄는 여러 대의 썰매가 등장해 영주의 저택에서 저택으로 이동하였고, 참가자들은 모닥불 주변에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카니발의 흥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눈이 훨씬 많이 내리던 과거에는 이러한 쿨릭 행렬이 일주일 이상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썰매를 타고 달리는 쿨릭의 풍경은 폴란드 화가들이 즐겨 다룬 대표적인 겨울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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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여러 달력에 수록된 봄을 주제로 한 삽화들 / Culture.pl 콜라주 / 사진: Polona.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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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과 추위로 뒤덮였던 겨울이 저물고 만물이 깨어나는 봄, 폴란드의 봄 '비오스나 wiosna'는 보통 3월의 어느 날 시작됩니다. 전통적으로도, 기상학적으로도 폴란드에서 봄의 시작은 3월로 여겨집니다.
이 시기는 폴란드에서 행운과 길조를 상징하는 새인 홍부리황새 '보치안 bocian'이 따뜻한 지역에서의 겨울을 마치고 다시 폴란드로 돌아오는 때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겨울 동안 돌보지 못했던 정원과 밭으로 다시 나가 식물과 작물을 가꾸기 시작하고, 봄의 도래와 함께 다양한 종교 축제들도 차례로 이어집니다.
4월: 부활절 '비엘카노츠 Wielkan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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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노비체에서의 안수》 / 브워지미에시 테트마예르 / 1897 / 크라쿠프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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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이 끝나고 이어지는 사순절을 지나면, 폴란드의 부활절인 '비엘카노츠 Wielkanoc'가 찾아옵니다. 폴란드 전통에서 부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는 성스러운 행렬로 시작되며, 부활절 일요일 아침에는 온 가족이 함께 부활절 아침 식사를 나눕니다. 이 식탁에는 사제가 축복한 부활절 음식 바구니인 '시비엥촌카 święconka'가 반드시 오르고, 장식 달걀 '피산키 pisanki'와 부활절 야자 장식 '팔마 palma' 역시 중요한 장식 요소로 함께합니다.
그리고 부활절 다음 날인 월요일에는 물을 뿌리는 풍습으로 잘 알려진 물에 젖은 월요일, '시미구스 딘구스 Śmigus Dyngus'가 이어집니다. 이러한 부활절의 풍경은 화가 브워지미에시 프셰르바-테트마예르가 크라쿠프 외곽의 마을 브로노비체 Bronowice에서 열린 부활절 축제를 그린 작품 《브로노비체의 부활절 축복 음식 Święcone w Bronowicach》에도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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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엘라니》 / 미하우 엘비로 안드리올리 / 녹색 주간 축제 / 사진: Polona.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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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 문화에서 기원한 녹색 주간은 5월 또는 6월에 기념하는 고대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자연의 힘을 기리기 위한 일종의 의식으로 사람들은 풍년을 빌며 불을 피우고, 초록빛 가지와 꽃으로 집을 장식합니다. 19세기에는 파종한 밭 위에서 성가를 부르며 성화와 함께 성스러운 행진을 하였습니다.
대도시와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로 여행길에 올랐고, 당시 바르샤바 시민들은 전통적으로 비엘라니 Bielany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이 모습은 미하우 엘비로 안드리올리의 그림 《비엘라니 Bielany》에서 잘 드러납니다. 현대 폴란드에서는 오순절 일요일에 녹색 주간을 함께 기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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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트키》 / 페르디난트 루슈치츠 / 1898 / 캔버스에 유채 / 72 x 92.5 cm / 사진: 쳉스토호바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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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녹색주간이 지나고 6월이 되면, 또 다른 고대 슬라브 축제가 시작됩니다. 소부트키 Sobótki 또는 ‘쿠팔라의 밤(폴란드어: 노츠 쿠파위 Noc Kupały / 영국에서는 '미드섬머 Midsummer'로 알려져 있으며, 폴란드에서는 '성 요한의 밤' 행사와 혼재되었다)’으로 알려진 이 신비한 의식은 그해의 밤이 가장 짧은 날인 하지(夏至)에 치러집니다.
폴란드인들은 이날을 맞아 점을 치고,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를 뛰어넘는 놀이를 합니다. 청년은 쿠팔라의 밤 당일에만 꽃을 피운다는 전설 속의 고사리꽃을 찾아 길을 나서고, 소녀는 꽃 왕관과 촛불을 강 위에 띄워 보냅니다. 페르디난트 루슈치츠 Ferdynand Ruszczyc는 작품 《소부트키 Sobótki》에서 아무도 모르는, 쿠팔라의 밤에 일어난 일들을 캔버스에 그려냅니다. 오늘날에도 몇몇 이들은 잊혀가는 고유 슬라브 전통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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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과 결혼식 Pogrzeb i wesele》 / 알렉산데르 코트시스 Aleksander Kotsis / 1864 /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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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서 결혼하기 좋은 달은 언제일까요?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결혼을 하기 좋은 달이겠죠. 7월의 전통적인 민속 예식을 담은 그림을 소개합니다. 전통 결혼식에는 복잡하고 화려하며, 고전적인 의례를 연상시키는 여러 단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렉산데르 코트시스 Aleksander Kotsis의 그림 《장례식과 결혼식 Pogrzeb i wesele》에는 신혼부부와 장례행렬(그림 오른편의 관)의 이미지가 병치됩니다. 일상과 역사적인 봉기의 전통을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시도로, 관에는 흰 독수리가 그려져 있고 위에는 '동맹국'의 빨간 모자가 씌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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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키》 / 미하우 스타호비치 / 1821 / 사진: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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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전통 추수 감사제 '도진키 Dożynki'는 추수가 끝난 뒤 오는 일요일에 열리는 행사로, 오늘날 폴란드에서는 주로 9월 초에 열립니다. 수확을 마친 농부들은 마을 근교 들판에 모여 행렬을 만들고, 근처 들판에서 수확한 작물의 단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미하우 스타호비츠 Michał Stachowicz의 그림 《도진키 Dożynki》에서 볼 수 있듯, 축제의 장소는 영주의 저택 마당이 되고도 합니다. 장식으로 사용되는 작물로 만든 단은 풍성한 수확을 상징합니다.
9월: 나팔절 ‘로슈 하샤나 Rosh Hasha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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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절 I Święto Trąbek I》 / 알렉산데르 기에림스키 / 캔버스에 유채 / 47 x 64.5 cm / 사진: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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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ksander Gierymski, "Święto Trąbek I", olej, płótno, 47 x 64,5 cm, fot. Muzeum Narodowe w Warszawie
역사적으로 폴란드는 다양한 민족의 전통이 어울려 살며 다문화 사회를 이뤘습니다. 알렉산데르 기에림스키 Aleksander Gierymski는 《나팔절 I Święto Trąbek I》에서 폴란드 유대인 공동체가 수 세기 동안 고향으로 삼아온 바르샤바 비스와 강가에서 열린 유대교 명절 '나팔절'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나팔절 '로슈 하샤나'은 히브리어로 '해의 머리(연초)'를 뜻하며, 유대교의 신년제와도 같은 명절입니다. 매년 유대교 달력에 따라 날짜가 바뀌나, 보통 9-10월에 기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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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채집》 / 프란치셰크 코스트셰프스키 / 《판 타데우시 Pan Tadeusz》 3장 수록 / 사진: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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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인이 가을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버섯을 따기 위해서 입니다. 가을이 오면 폴란드인들은 크고 맛있는 버섯을 따기 위해 숲속으로 모험을 떠납니다. 갓 딴 신선한 버섯은 그대로 요리해서 먹거나 건조와 절임 등의 과정을 거쳐 저장 식품이 되기도 합니다.
독버섯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니 버섯을 직접 딸 때는 언제나 주의가 필요합니다. 폴란드 귀족의 모습이 잘 묘사된 아담 미츠키에비츠 Adam Mickiewicz의 서사시 《판 타데우시 Pan Tadeusz》에 수록된 프란치셰크 코스트셰프스키 Franciszek Kostrzewski의 그림《버섯 채집 Grzybobranie》은 폴란드인의 버섯 따기 문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11월: 위령의 날 ‘자두슈키 Zadusz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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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슈키》 / 비톨트 프루슈코프스키 / 사진: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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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은 모든 성인을 기리는 '모든 성인 대축일 Wszystkich Świętych'로, 폴란드 달력에서 가장 엄숙한 날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날 폴란드인들은 묘지와 무덤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무덤 위에 수많은 촛불을 밝힙니다. 이튿날인 11월 2일은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을 추모하는 위령의 날, '자두슈키 Zaduszki'입니다. d혹시 운이 좋다면(혹은 안 좋다면!), 비톨드 프루슈코프스키 Witold Pruszkowski의 그림 《자두슈키》처럼 길을 잃은 슬픈 영혼을 마주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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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에서》 / 루드비크 스타시아크 / 사진: 라친스키 재단 / 포즈난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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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은 폴란드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달입니다. 루드비크 스타시아크 Ludwik Stasiak의 《베들레헴에서 W Betlejem》는 아기 예수의 구유 주위에 목자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전통적으로 폴란드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인 '비길리아 Wigilia' 날 자정 즈음 성당에서 열리는 '파스테르카 pasterka (일명 양치기의 미사)'에 참여하여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릅니다. 폴란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명절인 만큼 폴란드에서는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전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자: 미코와이 글린스키 (2017년 12월 29일) / 번역: AL (2022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