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실과 날실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 세계
향수와 천을 수집하고, 문장에서 동사를 많이 사용하는 폴란드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어린 시절부터 시집을 읽고 지도를 보며 상상력을 키워온 작가는 예술적인 영혼과 진지한 태도로 작품을 다루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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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위한 자장가》 / 지은이: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 옮긴이: 이지원 / 2019 / 출판: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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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옷장은 단골 중고물품점에서 구입한 다양한 옷감, 자투리 천, 냅킨, 패턴 원단, 자수가 놓인 천으로 가득합니다. 수집한 직물을 자르고 붙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 콜라주 작업을 완성합니다. 흐미엘레프스카 가족의 옷감 전통은 이렇게 대를 이어 내려옵니다.
“아름다운 색상과 질감을 가진 직물을 수집하고, 수집한 물건을 콜라주 작업의 재료로 사용합니다. 제 모든 책은 씨실과 날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딸이 친할머니를 닮는다는 가설이 혹시나 옳다면, 그 가설을 증명하는 최고의 예는 바로 저일 것입니다.”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할머니에 대한, 그리고 할머니를 위한 책 《할머니를 위한 자장가 Kołysanka dla babci》는 그림책 계의 오스카상으로 알려진 볼로냐 라가치상 뉴호라이즌 부문을 수상하였고, 이는 《마음의 집 Maum. Dom duszy》, 《눈 Oczy》에 이어 작가가 받은 세 번째 라가치상입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Iwona Chmielewska의 그림은 단순한 일러스트가 아닌 상징과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야기 그 자체로, 작가는 그림을 통해 우리가 언어로 볼 수 없는 세상을 전달합니다. 그림 속에서 줄무늬 천은 우츠 방직공들의 집으로, 냅킨은 블루베리가 든 피에로기(역주: 폴란드식 만두)로, 할머니의 단추는 난쟁이 손에 든 포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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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에 뭐가 있을까 W kieszonce》의 손바느질 주머니 속에는 동물과 물건이 숨겨져 있고, 《블룸카의 일기 Pamiętnik Blumki》의 오래된 독일어 노트에는 코르차크 Korczak 교수가 돌보는 아이들의 삶이 담겨있고, 《작은 발견 O tych, którzy się rozwijali》 속 실은 우리의 일상을 도와주며 구해주고, 《네 개의 그릇 Cztery zwykłe miski》 속 그을린 종이, 오래된 지도, 그리고 도서관에서 떨어진 책의 파편은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고, 컷아웃 기법이 사용된 《시간의 네 방향 Cztery strony czasu》의 연극 무대 위에서는 토룬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책의 80%는 머릿속에서 탄생하고, 좋은 아이디어는 예기치 않은 순간 떠오른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여자아이의 왕국 Królestwo dziewczynki》은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폴란드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반이나 차 있을까 반밖에 없을까? Do połowy pełne czy do połowy puste》는 달리는 차 안에서, 《할머니를 위한 자장가》는 할머니의 단추를 책상 위에 늘여놓던 순간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떠오른 아이디어는 노트 속에서 이야기로 발전하고, 하나의 노트에는 하나의 이야기만이 담깁니다. 이미지보다는 글로 생각을 발전시키는 작가의 성냥갑 크기 노트 속은 그림 스케치 대신 필기로 가득 채워집니다. 흐미엘레프스카 작가는 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는 완성된 작품에 변화를 주지 않습니다.
작품형식
작업과정에서 흐미엘레프스카는 시나리오 작가, 세트 디자이너, 감독, 편집자, 건축가 등 다양한 역할을 도맡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과 독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꾸며, 마치 이들이 공간의 주인인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인터뷰 / 아가타 나피오르스카 Agata Napiórska 《예술가들의 작업방식 - 폴란드 창작자들과의 대화 Jak oni pracują? Rozmowy z polskimi twórcami》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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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형식은 내용에, 내용에 형식에 서로 영향을 줍니다. 양방향 형식의 그림책 《파란 막대/파란 상자Niebieska laseczka/Niebieska skrzyneczka》는 생일선물로 파란 막대를 받은 소녀 클라라와 파란 상자를 받은 소년 에릭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두 어린이는 책 가운데에서 놀라운 결론을 맞습니다. 《블룸카의 일기》와 오래된 방직공장 카탈로그를 보는듯한 《할머니를 위한 자장가》는 일기와 자장가라는 형식을 사용해 내용을 극대화합니다. 책에 수록된 삽화에 드러난 엠보싱 질감과 컷아웃 기법 등, 책 자체가 가진 물리적 특성은 독자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작가는 때로 우리의 감각을 시험하기도 합니다. 《두 사람 Dwoje ludzi》에 수록된 삽화는 마치 우리가 창문과 기둥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마주 보는 얼굴을 보는 것인지 착각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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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상적인 요소가 자주 등장합니다. 《문제가 생겼어요! Kłopot》의 식탁보 위 삼각형 모양의 탄 자국과 《두 여자 Obie》의 마음 속 걱정을 비춰주는 거울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입니다. 특히 거울 모티브는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마음의 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알루미늄 포일로 표현된 책 마지막 페이지 거울은 다음 페이지를 비춰 새로운 의미를 완성하고, 책 속의 입체감은 책 속의 주인공을 가깝게 이어주고, 마음, 감정, 기억이 담긴 내러티브를 새롭게 만들어 냅니다.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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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 / 그림: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 글: 유스티나 바르기엘스카 / 2016 / 출판: Wol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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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 속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여백입니다.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여분의 글과 그림이 배제되어야 합니다. 작품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제한이 아닌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독자는 여백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거나 쉬어가며 의미를 해석할 기회를 얻고, 결국 여백 그 자체가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습니다. 곽영권이 글을 쓰고 흐미엘레프스카가 그림을 그린 《비움BIUM - puste miejsce w sercu》은 여백이 잘 드러나는 책으로, 동양철학에 대한 내용이 테이블을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그림책 속의 그림과 글은 같은 선 위에서 중복되지 않는 세계를 창조합니다. 이들은 서로를 추월하고 견제하면서 글과 그림을 동시에 수용하는 독자를 상대로 어려운 게임을 합니다.”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서로를 충분히 보완하지 못하는 의미는 쌓이고, 때로는 논쟁에 이르게 됩니다. 유스티나 바르기엘스카 Justyna Bargielska가 글을 쓰고 흐미엘레프스카가 그림을 그린 책 《두 여자 Obie》는 단어와 이미지의 왜곡된 관계가 잘 드러나는 책입니다. 글 속에 담긴 딸을 향한 어머니의 불안정한 사랑은 그림의 구조에 스며들고, 시각 언어인 그림과 문자 언어인 글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존재 없이는 작용할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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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엘레프스카 작가는 특히 한국 그림책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2003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첫 방문 자리에서 이지원 번역가와 인연을 맺으며 한국 그림책 시장에 소개되었고, 지금까지 20권이 넘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폴란드 그림책 작가로 자리 잡은 흐미엘레프스카의 책의 한국 발행부수는 대략 6천 부 가량으로, 이는 2천 부 정도에 이르는 폴란드 발행 부수에 비해 3배 많은 숫자입니다. 또한, 한글을 주제로 펴낸 그림책 《생각하는 ㄱㄴㄷ》은 일부 내용은 초등 1학년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하였습니다.
내용
흐미엘레프스카의 책은 인간관계와 사회적 불평등, 그로 인해 생긴 문제, 장애, 관용, 책임, 무상, 죽음이라는 주제가 담긴 씨실과 항상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로 이뤄진 날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 속의 씨실과 날실은 서로 엮이고 고리를 만들어 마치 실에 꿰인 구슬과 같아지고, 우연이 아닌 인과관계로 이뤄진 이야기를 빚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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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비롯한 어려운 책 속 주제는 있는 그대로가 아닌 다른 관점을 거쳐 독자에게 소개됩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로 독자를 안내할지언정, 이들의 손을 끌지는 않습니다. 해결책보다는 가능성과 질문을 제시하고, 생각의 자유를 가질 시간과 실수를 허락합니다.
작품 속 침묵은 비명보다 더 심오한 의미를 갖고, 진지한 주제는 때로 몽상적이고 불편할지도 모르는 불분명한 이미지와 함께 제시됩니다.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은 글과 시에 의미를 더하는 존재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작품 그 자체입니다. 독특한 형태와 선, 탁한 색상을 사용한 독자적인 그림 스타일은 저절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 뿐만 아니라, 작품을 보는 독자와 출판사 관계자들로 하여금 종종 두려운 감정을 갖게 합니다. 사춘기 소녀가 겪는 변화를 담은 책 《여자아이의 왕국 Królestwo dziewczynki》 발간 전, 작가는 스스로 두려움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 몹시도 직관적이고 개인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등장할 해결책을 기다리며 무의식적으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 아그니에슈카 소빈스카 Agnieszka Sowińska의 가제타 비보르차 Gazeta Wyborcza 신문 인터뷰 발췌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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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ona Chmielewska "Eyes", fot. Monika Obuchow / www.ksiazkiobrazkowe.blogspot.com
책 제작에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나요?
“반년이 걸릴 때도 있고, 아침저녁 종일 작업에 몰두해 한 달 안에 책이 완성되기도 합니다. 작업이 시작되면 책은 제 일부가 되어버리고, 작업이 끝날 때까지 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제 작업 방식 때문에 종종 다음 책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 아가타 나피오르스카 Agata Napiórska와의 인터뷰
작가는 필요에 따라 작업 기간을 몇 년으로 늘리기도 합니다. 책 작업이 끝난 후에는 출판사를 찾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흐미엘레프스카는 독학으로 책 제작을 익혔다고 말합니다. 토룬의 코페르니쿠스 대학교 미술학부 재학 시절 발표한 작품들은 서사가 결여된 그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초기 작업 중 하나인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은 인쇄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와 달리 흑백 작품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도서관에서 시집을 즐겨 읽곤 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시집 삽화 작업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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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작품의 글과 그림을 직접 쓰고 그리지만, 종종 다른 글 작가들과의 콜라보 작업을 통해 책 속에 두 작가의 개성과 목소리를 한 책에 담아내기도 합니다. 흐미엘레프스카는 단어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그림이 아닌, 독자적인 해석과 숨겨진 이야기가 담긴 하나의 작품을 만듭니다. 글 속의 분위기를 그림에 불어넣어 독자를 새로운 마법의 차원으로 인도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흐미엘레프스카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맡은 크리스티나 미워벵츠카 Krystyna Miłobędzka의 《높은 산 위에서 Na wysokiej górze》, 카지미에라 이와코비추브나의 Kazimiera Iłłakowiczówna 《마녀 Czarownica》, 유제프 체호비치 Józef Czechowicz의 《하늘이 울음을 멈출 때까지 Dopóki niebo nie płacze》, 유스티나 바르기엘스카 Justyna Bargielska의 《두 여자》 속에서 잘 드러납니다.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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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그릇》 / 글&그림: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 출판: Form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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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엘레프스카가 빚어내는 그림책 문학의 독자는 특정한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비교적 단순한 내용을 담은 그림책 《발가락 O wędrowaniu przy zasypianiu》과 《네 박자 자장가 Kołysanka na cztery》 조차 대상 독자를 유아로만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독자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작품의 '공동 제작자'가 되어 낯선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책 속 인물의 감정을 경험합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가 읽을 수 있는 흐미엘레프스카의 책은 우리 모두에게 뜻밖의 생각과 새로운 해답을 가져다줍니다.
새로운 작품을 출판할 때마다 작가는 독자를 위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길어지는 대화에 결국 어쩔 수 없이 먼저 자리를 뜰지라도, 독자들은 자리에 남아 대화를 계속해서 이끌어갑니다.
“작가와의 대화 이벤트 진행 전, 정장을 입은 한국 회사원들이 긴 테이블에 모여 앉아 《문제가 생겼어요! Kłopot》에 대해 토론을 나누는 사진을 한국 블로그에서 보았습니다. 업무와 관련된 자기계발이나 취미활동 대신, 제 책을 주제로 창의력을 계발하는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 세바스티안 프롱츠키에비치 Sebastian Frąckiewicz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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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엘레프스카는 2018년에 이어 2020년까지 2회 연속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습니다. 어린이 책 분야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은 2년마다 한 번 개최되며, 1982년에는 폴란드 일러스트레이터 즈비그니에프 리흘리츠키 Zbigniew Rychlicki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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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건축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에 대해서 Architektura picture booka. Twórczość Iwony Chmielewskiej》 / 마르타 바셰프스카 Marta Baszewska / 2020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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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접히는 팔꿈치 -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대화 Ten łokieć źle się zgina. Rozmowy o ilustracji》/ 세바스티안 프롱츠키에비치 / 2017년, 보워비에츠 Wołowi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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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작업방식 - 폴란드 창작자들과의 대화 Jak oni pracują? Rozmowy z polskimi twórcami》 / 아가타 나피우르스카 / 2016년 9월 23일 / 가제타 비보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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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Iwona Chmielewska: mistrzyni słowobrazu》 / 아그니에슈카 소빈스카 Agnieszka Sowińska / 가제타 비보르차 / 2016년 9월 23일
저자: 아그니에슈카 바른케 Agnieszka Warnke / 번역: AL, 2020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