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일러스트레이터, 판화가, 포스터 작가, 무대미술가. 1982년에는 어린이책 작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상이자 작은 노벨상으로도 불리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IBBY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았다. 1922년 1월 17일 카르파티 산맥 지역의 작은 마을 오제후프카 Orzechówka에서 태어나 1989년 9월 10일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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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비그니에프 리흘리츠키 Zbigniew Rychlicki는 크라쿠프 국립미술학교 Instytut Sztuk Plastycznych에서 책 디자인을 전공했다. 나치 점령 시기 학업을 시작해 학업과 동시에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리흘리츠키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책으로 엮어낸 작가 스타니스와프 K. 스토프치크 Stanisław K. Stopczyk는 당시의 리흘리츠키에 대해 "미래의 거장은 자신의 재능을 독일 점령 시기의 신분증을 위조하는 데 썼다"는 말을 남겼다. 1946년 국립미술학교를 졸업 후 10년 후인 1956년 크라쿠프 국립미술원 Akademia Sztuk Plastycznych에서 두 번째 학업을 마쳤다.
리흘리츠키 작품 세계의 초반은 애니메이션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 1947년 우츠 애니메이션영화스튜디오 Studio Filmów Rysunkowych 와 일하면서 애니메이션 속의 인물과 장식을 그렸다. 1949년 우츠에서 바르샤바로는 거처를 옮겼고, 리흘리츠키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간 첫 책인 한나 야누셰프스카 Hanna Januszewska의 ⟪구시가에서의 피자 Pyza na Starym Mieście⟫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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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귀 곰돌이와 친구들 Miś Uszatek i Przyjaciele⟫ / 즈비그니에프 리흘리츠키 그림, 사진: Dom Aukcyjny DESA/bid.desa.pl
바르샤바에서 리흘리츠키는 사회주의 폴란드 시절 가장 중요한 출판사였던 나샤 크시엥가르니아 Nasza Księgarnia(역: 우리 책방)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35년이란 세월을 아트 디렉터로 일했다. 1921년에 세워진 나샤 크시엥가르니아는 이미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어린이책만 450권을 출판했는데, 새로운 사회주의 문화 정책 하에 더욱더 활발히 활동하며 주요 출판사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전쟁 후 처음 몇 년 동안에는 어린이책을 출간하는 거의 유일한 출판사이기도 했다. 나샤 크시엥가르니아는 출판 이외에도 국제 콘퍼런스와 심포지엄, 세미나를 조직했는데 이 중에서는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을 주제로 한 것들도 있었다.
리흘리츠키가 아트 디렉터를 맡았던 시기 나샤 크시엥가르니아는 전후 폴란드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일러스트레이터들과 함께 일하며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잘 알려진 아티스트들뿐만 아니라 국립 미술원의 가장 뛰어난 졸업생들을 섭외하였고, 국립미술원 졸업생들의 실습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작가로서의 리흘리츠키의 작품 세계뿐 아니라 리흘리츠키의 사회적 활동과 조직 역량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많은 글을 썼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며, 출판사에서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첫 발자국을 찍을 수 있게 데뷔를 도왔다. 또한 1973년부터 포즈난에서 열리기 시작한 어린이예술비엔날레 Biennale Sztuki dla Dzieci에서 ⟪어린이책과 일러스트레이션 Grafika książkowa i książki dla dzieci⟫ 전시를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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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민담집 Klechdy domowe⟫ | 글: 한나 코스트리코 Hanna Kostyrko, 그림: 즈비그니에프 리흘리츠키, 출판: 나샤 크시엥가르니아 (바르샤바 1960) | 사진: ⟪Captains of Illustration: 100 Years of Children’s Book from Poland⟫ (2019), 출판: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
리흘리츠키는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 학파'로 알려진 20세기 후반의 일러스트레이터 중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면서 당대 어린이책 출판의 중심이 되었던 출판사의 아트 디렉터로서,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모양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르바라 가브릴루크 Barbara Gawryluk는 리흘리츠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가장 어린 독자들을 위한 책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리흘리츠키였다." 스타니스와프 K. 스토프치크은 이렇게 회고한다. "리흘리츠키는 글 작가와 그림 작가 사이의 조정자였다. 갈등 상황과 스캔들에 이르지 않도록 현명함과 교양으로 문제를 부드럽게 만들었고, 모든 창작자를 존경심을 가지고 대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또한 똑같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름다운 책을 볼 권리가 있고,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은 바로 행복한 어린 시절의 권리인 아름다운 이상을 창조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라 하였다. 리흘리츠키의 아들인 안제이 리흘리츠키 Andrzej Rychlicki는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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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책에 사인을 하실 때 그냥 이름만 쓰기 보다는 언제나 무엇이라도 그려주려고 하셨어요. 헌사 옆에는 곰돌이나 인형 그림이 항상 있었고, 냉랭하게 이름만 쓰는 것이 아닌 무언가 흥미로운 것이 그 옆에 있도록 했어요. [...] 아버지는 출장을 자주 가셨는데, 학교나 유치원을 방문하고 책 장터나 북 페어에 참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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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부터 리흘리츠키는 치텔니크 Czytelnik (역: 독자), 크숑슈카 이 비에자 Książka i Wiedza (역: 책과 지식) 등 여러 주요 출판사의 책 표지 디자인 작업을 했다. 또한 1970년대와 80년대 나샤 크시엥가르니아, 치텔니크, 청소년출판본부 Młodzieżowa Agencja Wydawnicza, 이스크리 Iskry (역: 불꽃), 포즈난 출판사Wydawnictwo Poznańskie, 실롱스크 출판사 Wydawnictwa Śląsk, 루부스키에 출판사Wydawnictwa Lubuskie, 민중출판조합 Ludowa Spółdzielnia Wydawnicza, 하체르스키에 호리존티 Wydawnictwo Harcerskie Horyzonty(역: 스카우트 호라이즌) 등이 참여한 출판 연합 프로젝트 ⟪어린이 도서관 Biblioteka Młodych⟫ 시리즈의 표지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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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비그니에프 리흘리츠키 ⟪트바르도프스카 부인, 발라드 Pani Twardowska. Ballada⟫ 일러스트레이션 (1955) / 사진: Mikołaj Gliński
리흘리츠키는 어린이 청소년 잡지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1961년부터 청소년 잡지인 ⟪친구 Przyjaciel⟫의 아트 디렉터로 일했고, 또 다른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 학파의 거장인 얀 마르친 샨체르 Jan Marcin Szancer나 올가 시에마슈코 Olga Siemaszko가 그림을 그렸던 어린이 잡지 ⟪귀뚜라미 Świerszczyk⟫와도 일했다. 잡지 ⟪곰돌이 Miś⟫의 표지를 그리기도 했는데, 바로 이 ⟪곰돌이⟫ 잡지에 1957년에 처음 ‘펄럭 귀 곰돌이’ 이야기가 연재되기 시작했다. 글작가인 체스와프 얀챠르스키 Czesław Janczarski가 쓴 곰돌이의 모습을 만든 것은 바로 리흘리츠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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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흘리츠키는 글 작가가 만든 성격에 매우 걸맞은 시각적 창조를 이뤄냈다. 그의 펄럭 귀 곰돌이는 어린이처럼 매력적이고, 가끔은 [...] 세상에 발을 내딛는 어린이처럼 서툴다. [...] 변화하는 표정의 곰돌이는 여러 가지 의상을 갈아입으며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 마우고자타 스트렝코프스카-자렘바 Małgorzata Strękowska-Zaremba
리흘리츠키는 펄럭 귀 곰돌이와 다른 주인공을 잡지의 페이지와 책에서 텔레비전 화면으로 옮기는 일도 하였다. 1975년부터 세마포르 Se-ma-for 스튜디오가 만든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과 배경을 디자인했는데, 이때에도 곰돌이에게 완전히 시각적인 측면의 명확한 성격을 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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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물에서 펄럭 귀 곰돌이는 한 회당 여러 번 옷을 갈아입는다. 리흘리츠키는 지루해서 의상을 갈아입힌 것이겠지만, 이 또한 주인공의 성격과 부합한다. [...] 펄럭 귀 곰돌이는 모든 날씨에 맞는 의상이 있고, 거기에 여러 별의 가운과 파자마도 가지고 있다." – 마우고자타 스트렝코프스카-자렘바
리흘리츠키가 시각적으로 창조한 다른 문학작품의 주인공은 마리아 코브나츠카 Maria Kownacka의 찰흙 인형 '플라투시 Plastuś'이다. 찰흙 인형 플라투시의 경우 리흘리츠키가 그의 모험을 그린 유일한 일러스트레이터는 아니었으나, 모두가 기억하는 찰흙 인형의 모습을 처음 만든 것은 리흘리츠키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았던 다른 작품으로는 루드비크 예지 케른 Ludwik Jerzy Kern의 ⟪코끼리야, 도와줘 Proszę słonia⟫, 반다 호톰스카 Wanda Chotomska의 ⟪물건에서 물건으로 Od rzeczy do rzeczy⟫, 조나단 스위프트 Jonathan Swift의 ⟪걸리버의 여행 Podróże Guliwera⟫, 쥘 베른 Jules Verne의 ⟪신비의 섬 Tajemnicza wyspa⟫, 프랭크 바움 Frank Baum의 ⟪오즈의 마법사 Czarnoksiężnik z Krainy Oz⟫ 등이 있다. 리흘리츠키는 작가 생활을 하며 150여 권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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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비그니에프 리흘리츠키 ⟪황금 샘물. 폴란드 민담집 U złotego źródła. Baśnie polskie⟫ 일러스트레이션 (1967) / 사진: DESA 옥션 하우스 / bid.desa.pl
다양한 책 가운데 동화와 민담집은 리흘리츠키가 가장 좋아하던 주제로,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그는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워비츠의 종이 오리기 공예인 비치난키 wycinanki와 포드할레의 목판화 등 폴란드 민속 예술에서 비롯한 여러 모티브를 주로 인용하기도 했다. 리흘리츠키의 아내였던 할리나 리흘리츠카 Halina Rychlicka에 따르면,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가족과 함께 적극적으로 시골의 문화생활에 참여하고 많은 민담을 들었던 것이 리흘리츠키의 예술적 감성과 민속 예술에 대한 사랑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작품 속 민속 요소들을 끌어오는 것은, 지역적인 민속 전통에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영감을 찾았던 전후 현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폴란드에서는 리흘리츠키 외에도 아담 킬리안 Adam Kilian이나 에우게니아 루잔스카 Eugenia Różańska등이 이런 경향을 보이며, 중부유럽에서는 리투아니아의 알비나 마쿠나이테 Albina Makūnaitė, 슬로바키아의 비에라 봄보바 Viera Bombová, 체코의 요세프 라다 Josef Lada 등의 작업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민속 예술만이 리흘리츠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은 아니었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에서 보이는 색채와 인물의 드로잉, 면의 구상, 매우 장식적인 형태에서는 켈트족의 필사본과의 관계성이 엿보이고, 구불구불하며 떨리는 선, 그리고 야한 색채를 보면 민속적인 요소 외에도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시대의 사이코델릭, 팝아트의 모티브들이 자유롭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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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비그니에프 리흘리츠키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O Królu Arturze i Rycerzach Okrągłego Stołu⟫ 일러스트레이션 (1979) / 사진: DESA 옥션 하우스 / bid.desa.pl
리흘리츠키는 여러 방면에 능한 아티스트였으며, 단순화된 사실주의, 장식적인 경향성, 민속과 현대적인 요소를 모두 이용했다.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인상파 적이면서 회화적이며 가끔은 번지는 색채의 효과에 기대기도 하고 명확한 윤곽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수채화가 주가 되지만, 구아슈와 템페라, 신문 잡지뿐 아니라 천 조각을 이용한 콜라주 등,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하기도 하였다. 형태적인 실험은 평생을 통해 계속하였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실험은 더욱더 대담해졌다고 리흘리츠키의 아들은 회고한다.
다재다능한 작가인 리흘리츠키는 형식 실험을 좋아했고, 일러스트레이션의 역할에 형식의 실험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에는 어린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조건에 표현을 맞추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믿음과 일러스트레이션이 표현하고 있는 텍스트와 일러스트레이션이 잘 어울려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시각언어로 규정할 수 있는 고정된 스타일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이 만드는 책의 텍스트에 따라 테크닉과 스타일을 맞추어 갔던 것이다.
리흘리츠키는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 학파 시기, 즉 전후에서부터 사회주의 폴란드의 쇠퇴기까지 내내 작가와 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했다. 1989년 9월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 BIB 기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행사에는 1967년 제1회부터 참석해 왔다. 리흘리츠키의 번역자이자 슬로바키아 출판인이었던 친구 페터 차치코 Peter Čačko는 BIB에서의 세상을 떠난 그의 죽음이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저자: 피오트르 폴리흐트 Piotr Policht (2023년 5월 23일 갱신) | 번역: 이지원 (2023년 11월) | 편집: 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