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아버지는, 일단 직업을 가진 후에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던지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방학 기간에는 그를 먼 친척 집에 보내 규칙적인 생활을 익히고 약사 일을 배우도록 하였다.
폴란드 남동부 도시 프셰보르스크 Przeworsk 인근 칸추가 Kańczuga 마을의 약국에서 보낸 첫날부터 어린 샨체르는 왠지 모르게 약 냄새들이 싫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의 그 기억에 대해 이렇게 재미있게 회상한다. "가루약들은 색깔에 따라 섞었다. 남은 조각들은 손가락으로 쓸어서 울퉁불퉁한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 경험은 먼 훗날 클렉스 선생님의 마법학교 시리즈를 그릴 때 소환되었는데, 클렉스 선생님은 프란치셰크 피셰르 Franciszek Fiszer (1986-1937, 폴란드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을 모델로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샨체르는 부모님 댁에 세 들어 살던 레오나르도 스트로이노프스키 Leonard Stroyjnowski에게 소묘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스트로이노프스키는 어린 샨체르를 가르치며 밀린 집세를 면제받았다. 가난한 화가였으나, 훌륭한 선생님이었던 스트로이노프스키는 샨체르에게 원근법의 원리와 해부학에 기초한 인체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가르쳤다. 얀 마르친 샨체르의 첫 번째 모델이 된 사람은 어머니였다.
야기에워대학에서 역사를 전공으로 학업을 시작했지만, 곧 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리 크라쿠프 미술원에서 유제프 메호페르 Józef Mehoffer와 카롤 프리치 Karol Frycz를 사사하였다(1920-1926). 또한 연극학교에서 마리안 예드노프스키 Marian Jednowski와 지그문트 노바코프스키 Zygmunt Nowakowski의 수업을 들었지만 (1920-1921), 무대 공포증으로 단 한 차례만 무대에 올랐다.
이 시기 크라쿠프 라이스카 Rajska 거리의 포프셰흐니 극장 Teatr Powszechny에 장식 그림을 그렸는데, 샨체르는 그의 첫 번째 전시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는 예술 궁전 Pałac Sztuki의, 옆쪽에서 빛이 들어오는 작은 전시실 두 개가 할당되었다. 그곳에 몇 년 동안의 작업을 최대한 빡빡하게 넣어 전시했다. 다양한 크기와 기법, 장르의 작품들이었다. 대규모 작업을 했던 시기의 목탄화, 볼레스와프 시미아위 Bolesław Śmiały 왕과 광란의 오를란도 Orlando furioso의 실제보다 더 큰 머리 그림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유화로 그려진 가까운, 그리고 먼 친척들의 초상화가 있었다. 여행 스케치와 풍경화, 누드와 함께 동화 일러스트레이션 역시 전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