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제나 트루하노프스카는 1929년 10월 9일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인 키베르체에서 태어난 일러스트레이터, 판화가, 화가이다. 본인의 독자적인 작품과 비에스와프 마이흐샤크와의 공동 작업으로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 학파를 만든 인물 중 하나이며, 어린이와 어른을 위해 100여 권에 달하는 책에 그림 작업을 하였다.
보제나 트루하노프스카는 책과 정기간행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과 엽서와 포스터 디자인 작업을 했던 작가이다. 공산 폴란드 시절 최고의 출판사인 ‘우리 책방 Nasza Księgarnia (나샤 크시엥가르니아)’, ‘독자 Czytelnik (치텔니크)’, ‘불똥 Iskry (이스크리)’ 등과 일했으며 어린이 대상의 ⟪귀뚜라미 Świerszczyk (시비에르치크)⟫, ⟪곰돌이Miś (미시에)⟫, ⟪작은 불꽃 Płomyczek (프워미체크)⟫, ⟪불꽃 Płomyk (프워미크)⟫ 등의 잡지에도 그림을 그렸다.
트루하노프스카는 얀 마르친 샨체르 Jan Marcin Szancer와 친분이 있었던 가족들의 지지를 받아 미술 공부를 시작하였다. 바르샤바 국립미술원의 얀 치비스 Jan Cybis에게 회화를 배우고, 타데우시 쿨리시에비치 Tadeusz Kulisiewicz에게 판화를 배웠다. 1952-1953년에는 판화과의 조교로 일하였고, 1955년 미술원을 졸업했다.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에 전념하기 위해 전통적인 작품 판화는 일찍이 그만두었다. 트루하노프스카는 과거를 이렇게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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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는 판, 부식, 찍기가 다였어요. 결국 다시는 판화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쿨리시에비치 교수님 밑에서 졸업작품을 한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지만요. 하지만 졸업 이후 더 많은 만족감, 즐거움, 돈을 가져다 준 새로운 분야로 바로 진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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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나 트루하노프스카 / ⟪인형⟫ (1969) / 사진: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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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재학 중일 때 트루하노프스카는 미래의 남편이 될 비에스와프 마이흐샤크와 Wiesław Majchrzak 앞으로 30년 동안 계속될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두 사람은 일러스트레이션뿐 아니라 전쟁 이후 재건되고 있던 바르샤바와 루블린의 건물 벽화 작업도 함께 하였다. 트루하노프스카와 마이흐샤크의 첫 번째 공동 작업은 1956년 ‘나샤 크시엥가르니아’에서 출간한 그림형제 동화집이다. 양식적인 면에서 두 작가는 그림형제의 작품이 쓰여졌던 19세기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참고해 19세기 독일 판화와 회화를 연상시키는 화법을 채택했다. 처음으로 혼자서 그림을 그린 큰 작업은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한나 야누셰프스카 Hanna Januszewska의 ⟪신데렐라 Kopciuszek⟫이다. 이후 이 책은 트루하노프스카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수없이 재쇄를 찍었는데, 트루하노프스카는 이 책이 자신의 경력의 변곡점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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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나 트루하노프스카 ⟪누구에나 자기 집이 있지Każdy Tomek ma swój domek⟫ (1963) / 사진: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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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트루하노프스카는 야니나 포라진스카 Janina Porazińska, 요안나 파푸진스카 Joanna Papuzińska, 유제프 라타이차크 Józef Ratajczak뿐 아니라 외국작가로는 이탈로 칼비노 Italo Calvino, 오스카 와일드Oskar Wilde, 또는 E.T.A. 호프만 E.T.A. Hoffmann의 폴란드어판 작품에도 그림을 그렸다.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은 어린이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으며, 역사, 시, 산문 등 여러 분야에 그림을 그렸다. 또한 볼레스와프 프루스 Bolesław Prus의 소설 ⟪인형 Lalka⟫에 나오는 인물들이 담긴 엽서 세트의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기도 하였다. 이후 작품에서 트루하노프스카는 네덜란드 회화, 초상화, 꽃 정물화 등 회화사를 참고하는 작업을 펼치는데, 매우 색깔이 다양하면서 장식적으로 나타나는 꽃은 작가 작품의 특징적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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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인 마이흐샤크와 계속해서 공동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트루하노프스카가 독자적으로 작업한 일러스트레이션에는 작가 자신의 개성이 드러난다. 수채의 색 면과 강렬한 색채의 과슈를 사용하는 트루하노프스카의 스타일은 마이흐샤크보다 훨씬 회화적이며, 야누시 그라비안스키 Janusz Grabiański를 닮아있기도 하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와 동화적이고 비밀스러운 기분은 구도와, 때로는 민속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매우 장식적이며 컬러풀한 배경, 부드러운 윤곽선과 뚜렷하지 않은 형태로 연출한다. 트루하노프스카의 개성은 매우 생생하게 살아있는 범위가 넓고 세련된 색채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가끔은 즈비그니에프 브조조프스키 Zbigniew Brzozowski의 ⟪에바 이야기 Opowieść o Ewie⟫에서 처럼 검정과 흰색 등으로 색을 제한하며, 거의 모노톤만을 사용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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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나 트루하노프스카 잡지와 엽서 디자인 중 (1986) / 사진: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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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하노프스카의 스타일은 본인이 인정하듯, 형식적인 탐구와 함께 성숙해 왔다. ‘우리 책방’의 미술감독을 맡았던 즈비그니에프 리흘리츠키 Zbigniew Rychlicki는 일러스트레이션이 어린이의 감수성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매우 중요시했는데, 트루하노프스카의 입장은 전혀 반대였다.
바르바라 가브릴루크 Barbara Gawryluk과의 대담에서 트루하노프스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렸어요. 제일 중요했던 것은 편집부의 마음에 드는지, 내 마음에 드는지였지, 어린이의 생각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았죠."
트루하노프스카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마케팅이 요구하는 바나 판매 부수, 정치적인 제한에도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
"‘나샤 크시엥가르니아’는 평화로운 오아시스와 같았어요. 우리는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었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죠.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매우 안전한 직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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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나 트루하노프스카 ⟪방황하는 네덜란드 인Latający Holender⟫ (2014) / 사진: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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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와 80년대 초반, 남편과 함께가 아닌 혼자서 그림을 더 자주 그리던 시기에 청소년 문학 일러스트레이션은 트루하노프스카 작업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다. 작가의 특징적인 정성스런 세부 묘사는 청소년 문학 속에서 역사적이고 동화적인 것이 아닌 현실 세계의 묘사로 나타났다. 즈비그니에프 브조조프스키의 ⟪에바 이야기⟫ 일러스트레이션에서 트루하노프스카는 시각적인 메타포뿐 아니라 당시의 패션, 인테리어, 건물 등, 당시의 시대상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야체크 프리드리히 Jacek Friedrich는 이렇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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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트루하노프스카는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의 보통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을 그렸습니다. 스웨터와 청바지, 티와 외투, 손뜨개로 만든 목도리를 둘둘 두르고, 코바늘로 뜬 모자를 쓴 아이들 말이죠. 그 아파트와 버스 정류장, 집안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 그 당시에 있었던 집들과 가구들을, 빗이나 치약을 선반에 내려놓는 장면들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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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나 트루하노프스카, 어린이 잡지 ⟪귀뚜라미Świerszczyk⟫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1969) / 사진: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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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하노프스카는 1959년 라이프치히 국제 책 디자인 전시회에서 마이흐샤크와 함께 은메달을 받은 이후로 수많은 상을 받아왔다. 2013년에는 IBBY 폴란드로부터 공로상을 받았으며 2014년에는 글로리아 아르티스 Gloria Artis 문화 훈장을 받았다.
글: 피오트르 폴리흐트 Piotr Policht (2022년 7월) / 번역: 이지원 (2023년 3월) / 편집: AL (202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