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에서 하차푸리까지 바르샤바에서 만나는 이국적인 맛
폴란드는 유럽에서 단일 민족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역사적 이유로 폴란드 내 소수민족 비율은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다문화는 일상에서 만나는 현실이 아닌 멀게만 느껴지는 환상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폴란드 내 외국인 거주 비율이 증가하며 폴란드 외식 업계의 다양성 또한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색다른 맛을 찾는 여러분을 위해 바르샤바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외국 음식을 소개합니다!
차이나타운, 리틀 이탈리아, 리틀 인디아와 같이 세계 곳곳의 대도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외국인 밀집 거주 지역은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바르샤바 외곽 지역에는 수많은 베트남인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고, 바르샤바는 유럽에서 가장 베트남 맛에 가까운 정통 쌀국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조지아 전통요리 하차푸리와 터키식 케밥은 오늘날 폴란드인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국민 요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근 바르샤바에서는 체첸과 타지키스탄에서 온 난민들이 폴란드 생활에 적응하고 또 폴란드 현지인에게 이들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도록 음식을 매개로 하는 프로젝트 '갈등의 주방 Kuchnia Konfliktu', '바벨 바 Babel Bar'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폴란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폴란드의 심장인 바르샤바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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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카 코소프스카 / 사진: 스와보미르 카민스키 /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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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톰한 코코넛 반죽에 튀긴 바삭한 치킨 볼, 다섯 가지 맛이 나는 돼지고기 요리, 새콤달콤한 오렌지색 소스를 넣은 다양한 요리, 양배추 샐러드, 파인애플과 죽순이 들어간 걸쭉한 소스 – 바르샤바에서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 음식이라는 사실, 믿겨 지시나요? 온갖 아시아의 맛을 한 곳에 담고 있는 이 요리는 폴란드에 이주한 베트남 이민자들이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바르샤바 시민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맛이지만, 오히려 베트남 현지 사람들에게 조금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폴란드식 베트남 요리입니다.
폴란드 내 베트남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 후반이며, 현재 폴란드에는 약 2만에서 3만 명의 베트남인이 살고 있습니다. 바르샤바의 베트남 음식 문화는 헌법 광장 Plac Konstytucji의 음식 가판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90년대 베트남인은 폴란드에서 '사이곤키 sajgonki'라 불리는 튀김 스프링 롤을 팔며 폴란드인에게 처음으로 아시아의 맛을 소개했습니다. 그 이후 현재 바르샤바 국립 경기장 자리의 '에우로파 바자르 Europa Bazaar'에서 쌀국수 '포 pho'를 팔며 입지를 넓혔습니다.
폴란드 요리와 중국 요리의 근본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폴란드 사람들에게 중국과 베트남은 거의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아시아에 대한 폴란드인의 부족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본연 그대로의 맛보다는 유럽인의 입맛에 맞춰 정체성을 잃어버린 베트남 음식 문화 또한 이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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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식당 / 크라쿠프 / 사진: 아드리안나 보헤네크 /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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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폴란드-베트남 2세 요리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5년 전부터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계 폴란드인 올라 응우옌 Ola Nguyen은 마스터 셰프 폴란드의 우승자 자리를 거머쥐었고, 오늘날 폴란드인은 한식, 중식, 베트남식이 어떻게 다른지 차이를 확연히 인식할 뿐 아니라 '진정한 현지의 맛'을 찾으려는 관심 또한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바르샤바 남서쪽 브워히 Włochy에 위치한 바칼라르스카 시장 Targowisko Bakalarska은 바르샤바에서 실제로 '베트남 사람이 고향이 그리울 때 먹는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시장 안은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 쇠고기가 들어간 쌀국수 포 보, 불에 구운 고기와 함께 먹는 분차 등 하노이 스타일 베트남 음식을 파는 가게와 아시아 식자재를 파는 슈퍼마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베트남인은 폴란드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베트남어를 아는 사람과 함께 가거나 번역기의 힘을 빌리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바르샤바의 진짜 '리틀 하노이'는 따로 있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약 25km 떨어진 작은 도시 불카 코소프스카 Wólka Kosowska는 거대한 중국 쇼핑 센터가 있는 곳이자 바르샤바의 미식가들이 꼭 가봐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베트남인은 폴란드인이 아닌 베트남인을 대상으로 요리를 하고 장사를 합니다. 달팽이 수프, 염소 선지 수프, 선지와 내장 고기가 들어간 죽 등 바르샤바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하고 호불호가 갈리는 현지 음식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2019년 11월 바르샤바에서 열린 '다섯 가지의 맛 아시아 영화제 Five Flavours Asian Film Festival'에서는 우츠 영화 학교를 졸업한 일본인 감독 마리코 보브리크 Mariko Bobrik의 첫 번째 장편 영화 <쌀국수의 맛 Taste of Pho/Smak Pho>가 상영되었습니다.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프리미어 무대를 가진 이 영화는 폴란드 사회와 현실에 적응하는 베트남인 셰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셰프의 딸은 고향인 베트남보다 폴란드 사회에 더 소속감을 느끼고,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먹는 학교 친구들과 달리 쌀국수를 먹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합니다. 2020년 3월 폴란드 개봉이 예정되었던 이 영화는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으로 인해 현재 개봉이 7월로 연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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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블린 소재의 아르메니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갈루스트와 그의 아들 / 사진: 야쿠프 오제호프스키 /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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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인의 폴란드 이민은 학생, 사업가, 예술가층을 중심으로 1990년 중반에 시작되었습니다. 2008년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 오세티아 전쟁이 발발 당시 폴란드가 조지아 측을 지지하면서 양국 간 사이는 더 돈독하게 발전하였고, 그 후 몇 년 간 이민도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폴란드의 경제와 정치 상황은 조지아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조지아의 아름다운 자연, 따뜻한 날씨, 맛있는 와인과 음식은 폴란드 여행자들을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바르샤바 전역에서 유행했던 조지아 혹은 아르메니아식 빵집은 여전히 폴란드 최신 요리 트렌드 중 하나입니다. 바르샤바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조지아 식당 또한 폴란드인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피에로기와 비슷한 조지아식 만두 힌칼리, 불에 구운 고기 요리, 치즈가 들어간 하차푸리는 폴란드인에게 익숙하지만, 이국적인 맛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폴란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조지아 음식은 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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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루씨 케밥 / 사진: 보이치에흐 크린스키 /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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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폴란드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은 케밥은 폴란드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는 패스트푸드입니다. 터키 현지의 케밥보다는 독일, 특히 베를린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되네르 케밥에 더 가까운 맛을 냅니다. 대부분 터키계 이민자들이 케밥 가게를 운영하는 독일과는 달리 폴란드 케밥 가게는 중동의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바르샤바에서는 21세기 초반부터 케밥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폴란드 케밥에는 두꺼운 빵을 사용하는 '터키식' 케밥과 얇은 빵을 사용하는 '아랍식' 케밥 두 가지가 있습니다. 빵 속에는 양고기 또는 닭고기, 채소, 절임 양배추 카푸스타 키쇼나를 넣고 갈릭 마요 소스 또는 매운 소스를 뿌려 완성합니다. 비록 터키 현지의 케밥과는 거리가 멀지라도 늦은 밤까지 파티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먹는 해장 음식으로 많은 폴란드인의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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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식당 / 바르샤바 빌차 거리 / 사진: 야체크 마르체프스키 /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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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빌차 Wilcza 거리에 위치한 '갈등의 식당 Kuchnia Konfliktu'에서는 매일매일 다른 하루가 펼쳐집니다. 이곳에서는 폴란드로 건너온 난민이 요리를 하고 서빙을 합니다. 하루는 타지키스탄식 플롭, 다음에는 우크라이나식 피클, 그리고 그다음에는 터키식 채소 수프를 먹을 수 있는 이곳의 규칙은 단 한 가지, '반드시 비건식이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갈등의 식당'을 운영하는 야르미와 리비츠카 Jarmiła Rybicka는 난민을 돕는 활동가로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음식을 통해 이들이 폴란드 사회에 적응하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갈등의 식당'은 다양한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모두가 어려운 시기 음식을 통해 대화의 문을 열게 해주는 관용을 나누는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콘비보 사회 협동조합 Convivo Social Cooperative에서 운영하는 바벨 바 Babel Bar 푸드 트럭은 요리로 풀어가는 또 다른 사회 운동 중 하나입니다. 서구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이국적인 체첸 요리를 매개로 난민과 폴란드의 거리를 좁혀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코티지 치즈와 버터가 들어간 푹신한 식감의 마늘 팬케이크 '체팔가쉬', 카자흐스탄식 만두 '만티', 우크라이나식 만두 '갈루슈키'는 뱃속뿐만이 아니라 마음속까지 따뜻하게 채워주는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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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식당 / 사진: 마르친 오바라 / P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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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루슈키'는 폴란드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인 우크라이나인의 전통음식입니다. 수많은 우크라이나 이민자 숫자에도 불구하고 바르샤바에서 실제로 우크라이나 식당을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폴란드 음식과 우크라이나 음식이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인 모두 발효음식, 코티지 치즈, 돼지고기, 감자를 즐겨 먹고 조금씩 레시피와 재료의 차이는 있지만 비트로 만든 수프 바르슈치 barszcz, 코티지 치즈와 감자가 들어간 만두 피에로기 루스키에 pierogi ruskie를 만들어 먹습니다. 모두가 '러시아식 피에로기'라고 생각하는 '피에로기 루스키에'는 사실 우크라이나 서쪽 지방, 폴란드 남서쪽 지방의 적루테니아 적(赤)루테니아에서 유래한 '루테니아식 피에로기'입니다.
리비우식 우크라이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카만다 르보프스카 Kamanda Lwowska'와 우크라이나에는 소박한 가정식만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주는 우크라이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카나파 Kanapa'는 바르샤바에서 진정한 우크라이나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대표 우크라이나 식당입니다.
'구조'라는 뜻의 폴란드어 단어 'ocalenie'에서 이름을 딴 오찰레니에 재단은 푸드 저널리스트 바시아 스타레츠카 Basia Starecka와 함께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체첸, 시리아 등 폴란드 난민들의 전통요리 레시피를 담은 책 <멜팅 팟: 새로운 폴란드인들의 식탁 Tygiel: Kuchnia Nowych Polaków>을 발표했습니다. 유럽에도 널리 소개된 팔라펠과 탑불레를 비롯해 이국적인 맛이 가득한 유카잎 수프, 멜론씨 음료, 예멘식 계란 & 콩 요리 레시피, 레시피를 제공한 난민과 함께한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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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토비체 ‘리틀 하노이’의 티 투 지앙 응우옌 / 사진: 카밀라 코투시 /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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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바르샤바를 방문하는 모든 난민, 이민자, 여행자 모두가 식탁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