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의 아버지 빈첸티 쉼보르스카 Wincenty Szymborski는 폴란드 남부 타트라산맥 도시 자코파네 Zakopane에서 브와디스와프 자모이스키 Władysław Zamoyski 백작의 재산 관리인으로 일했다. 자모이스키 백작은 폐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코파네에 머물렀지만, 연이어 앓게된 심장병으로 인해 결국은 자코파네를 떠나야만 했다. 로테르문트 Rottermund 가문에서 태어난 어머니 안나 마리아 Anna Maria는 비스와바의 언니인 나보야 Nawoja와 함께 쿠르니크 Kórnik로 거처를 옮겼고, 바로 그곳에서 쉼보르스키 가문의 둘째 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태어났다. 자모이스키 백작이 세상을 떠난 뒤 쉼보르스카의 가족은 토룬으로 떠났고, 5년 후에는 크라쿠프로 거처를 옮겼다.
그 이후 작가는 일생의 대부분을 바벨성이 위치한 폴란드의 왕도 크라쿠프에서 보냈다. 우르슐란키 자매 중학교 Gimnazjum Sióstr Urszulanek 입학한 쉼보르스카는 독일의 폴란드 점령 당시 비밀 교육 조직에서 수학하며 1941년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치렀다. 1943년에는 나치 독일로 추방되지 않기 위해 철도 사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쉼보르스카의 특별한 예술적 재능은 얀 스타니스와프스키 Jan Stanisławski의 교과서 ⟪First Steps in English⟫ 개정본 작업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1945년 크라쿠프의 일간지 ⟪폴란드 일보 Dziennik Polski⟫에서 ⟪단어 찾기 Szukam słowa⟫라는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 1년 후 크라쿠프의 야기에워대학교 폴란드어학과 입학 후 사회학과로 전과하였으나, 재정문제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시인이자 편집자
1948년 쉼보르스카는 시인 아담 브워데크 Adam Włodek와 결혼을 하였다. 부부가 된 두 작가는 크루프니차 거리 22번지의 '문학가의 집 Dom Literatów'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곳에서 수많은 훌륭한 문인들을 만났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 생활은 1954년 마침표를 찍게 되었고, 두 작가는 친구로 남았다. 15년 후, 쉼보르스카는 코르넬 필리포비치 Kornel Filipowicz와 연인관계로 발전하였으나, 결혼은 하지 않고 따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