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셰프스키: 연극 속 바둑 경기는 예술의 메타포로도 해석됩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의 창의성에 어떤 위협을 가져온다고 보시나요?
코르차코프스카: 제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은, 예술 시장 머지않아 위조품으로 넘쳐나고 그 속에 진짜 예술이 잠겨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 진정한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주장은 논리적 근거나 사실에 기반하기보다 신념에 의존하고 있을 뿐입니다.
딥마인드와의 협업 과정에서 드라마 작가와 시나리오 작가를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 '파뷸라 Fabula'를 직접 테스트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뛰어난 엔지니어들의 열정과 오랜 노력이 집약된 놀라운 도구이지만, 그 뒤에는 "연극 예술을 민주화할 수 있다", 즉 "버튼 하나만 누르면 완성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살아 있는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시대에 뒤처진 패턴들에 의존하기 때문에, 급격히 변화하는 우리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챗GPT에게 "인간이라는 종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대답이 이어졌지만, 그중 한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챗GPT는 "인간이 언젠가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이 죽게 될 것을 알고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 예술이란 바로 그 죽음을 인식하면서도 살아가게 해주는 힘, 즉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견디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결코 '진정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작셰프스키: 그 외에 또 어떤 부분이 우려되시나요?
코르차코프스카: 저는 사람들이 일상의 일을 인공지능에 의존하게 되면서, 결국 사고력과 감수성을 잃고 예술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이미 이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 중인데, 그 결과에 따르면 인공지능 사용은 인간의 뇌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 세계에서도 예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감각을 자극하는 몰입형 세계 속에서 쾌락에 빠져드는 '감각 콘서트'를 즐깁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느끼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제가 《알파고_이세돌: 희생 이론》을 쓰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이세돌 9단이 대국 이후 세간의 관심에서 물러난 지 거의 10년 만에 서울대학교에서 한 강연의 내용이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바둑을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 배운 마지막 세대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평생을 그 예술에 바쳤다고 했습니다. 알파고가 인간을 이긴 이후, 많은 기사들이 인공지능의 전략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전략을 바탕으로 초반 50수를 통째로 외워두는 방식으로 대국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세돌에게 바둑은 무(無)에서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예술이었습니다. 오직 흑과 백, 두 색깔의 돌만이 놓인 빈 바둑판 위에서, 직관과 창의성, 그리고 두 인격의 대립이 만들어내는 공동 창작 행위였던 것이죠. 연극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은 무대라는 빈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 사이에서만 비로소 탄생합니다.
인공지능은 과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있어 훌륭한 도구입니다. 앞서 언급한 데미스 허사비스는 2024년,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이는 의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발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직관에 기반한 영역입니다. 제가 종종 인용하는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치 비트카치 Stanisław Ignacy Witkiewicz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은 인류를 완전한 자동화로 몰고 가는 수레의 바큇살에 끼워진 유일한 막대기다."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또 다른 거대한 우려가 떠오릅니다. 바로 '검열'입니다. 예술은 자유 없이 존재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시장을 통제하고 검열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