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라조바 볼라 Żelazowa Wola의 프리데리크 쇼팽 Fryderyk Chopin 생가는 많은 이의 손을 거쳐 오늘날 박물관으로 거듭났습니다. 위대한 작곡가 쇼팽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장소를 넘어 그의 작업 정신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담긴 장소로 거듭났습니다.
젤라조바 볼라 Żelazowa Wola의 쇼팽 생가 박물관은 위인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다른 생가 박물관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 공간입니다. 쇼팽이 태어난 저택과 그 주위를 둘러싼 공원은 위대한 작곡가와 그 가족의 기념품, 기록물을 전시하는 공간이자 방문객이 쇼팽의 '정신', 그가 살던 시대, 음악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프리데리크 쇼팽 Fryderyk Chopin은 1810년 소하체프 Sochaczew 인근 젤라조바 볼라에 있는 귀족의 저택에서 태어났습니다. 쇼팽의 아버지인 니콜라 쇼팽 Nicolas Chopin은 저택의 소유자인 스카르베크 Skarbek 백작 부인의 자녀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일하며 저택의 왼쪽 별채에 살았습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며 백작 부인의 친척인 유스티나 크시자노프스카 Justyna Krzyżanowska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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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조바 볼라 쇼팽 생가 / 사진: Marzena Hmielewicz / Forum
1810년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난 프리데리크 쇼팽은 태어난 지 몇 달 후인 10월, 가족과 함께 바르샤바로 이주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 쇼팽을 기리기 위한 장소로 쇼팽 생가를 이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19세기 후반이 되어 처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1918년 폴란드가 독립을 되찾은 뒤, 이 프로젝트가 다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결성된 쇼팽 생가 친선 협회, 소하체프 쇼팽 위원회를 통해 젤라조바 볼라 쇼팽 생가 박물관을 만드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전간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레흐 니에모예프스키 Lech Niemojewski와 함께 쇼팽 가족이 거주하던 별채는 본채로 확장되었고, 내부 가구 또한 수리를 거치게 되었습니다. 황폐한 별채는 두 개의 큰 기둥이 지지하는 삼각 형태의 현관으로, 쇼팽이 살았던 불편하고 검소한 방은 쇼팽 시대 스타일을 갖춘 가구가 놓인 거실로 꾸며지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초의 귀족 저택이 어떤 모습과 인테리어를 갖춰야 하는지 낭만적인 아이디어가 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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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조바 볼라 프리데리크 쇼팽 생가 내 피아노 / 사진: Franciszek Mazur / AG
1920-1930년대, 저택에 적용된 '민족적인 양식'은 분할시기를 거친 폴란드인들이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젤라조바 볼라에서 시작된 이 움직임은 폴란드라는 국가상징을 중심으로 하나의 애국 커뮤니티를 구축하려는 시도와 위대한 예술가 쇼팽을 기리고자 하는 목표가 함께했습니다. 쇼팽이 이 저택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화되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유명 작곡가의 취향이 형성된 '폴란드 가정'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완벽한 구실이 되었습니다.
쇼팽이 태어나던 당시의 저택 주변은 정원보다는 농장에 더 가까웠지만, 중요한 점은 현실을 고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조경가이자 바르샤바 미술대학교 교수, 바르샤바 생명과학대학 원예학부 조경디자인 연구실 설립자, 바르샤바 공대 건축학부 인테리어・조경 디자인 학과장이었던 프란치셰크 크시프다-폴코프스키 Franciszek Krzywda-Polkowski 교수는 생가 주변의 정원을 디자인했습니다. 1932년부터 1938년까지 진행된 정원 디자인에는 낭만주의와 모더니즘 스타일이 결합되었고, 20년간 지속된 전간기 형식을 갖춘 정원 중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결과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저택을 중심으로 비대칭적 형태를 갖춘 공원에는 폴란드 자생종 나무와 외래종 나무, 연못, 저수지가 갖춰져 있습니다. 크시프다-풀코프스키 교수의 계획에 따라 조성된 우트라타 Utrata 강이 흐르는 공원에는 퍼걸러와 작은 계단, 전망대 등 작은 건축물을 비롯해 계단식 좌석이 있는 야외 음악 무대가 설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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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데리크 쇼팽이 태어난 저택 건물 / 사진: Marek Dusza
1939년 드디어 개관한 쇼팽 생가 박물관은 제2차 세계대전의 화마에서 살아남았지만, 박물관의 '유일한' 인테리어였던 가구와 쇼팽 기념품들은 독일군에 의해 약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49년, 박물관은 다시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현재 국립 프리데리크 쇼팽 인스티튜트의 전신인 바르샤바 프리데리크 쇼팽 협회에서 1953년부터 박물관 건물과 정원 관리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프리데리크 쇼팽 탄생 기념일을 맞아 박물관의 현대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저택 내부에서는 새로운 전시회가 열리고, 크시프다-폴코프스키 교수가 디자인한 정원 또한 새롭게 단장되어 쇼팽의 음악과 어울리는 '폴란드스러운' 낭만주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공원 입구에는 연간 10만 명의 관광객을 맞을 수 있도록 완전히 새롭게 건설된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세심하게 설계된 이 공간에 현대적인 건물을 도입한다는 것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매우 위험한 시도로 평가받았습니다. 새로운 건물 디자인 작업은 볼레스와프 스텔마흐 Bolesław Stelmach에게 위임되었고, 2009년 바르샤바에는 쇼팽 인스티튜트를 위한 새 건물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스텔마흐는 젤라조바 볼라 쇼팽 생가 박물관의 신규 건물을 위해 나무, 벽돌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하였고, 저택 및 공원과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전면이 유리로 된 건물을 디자인했습니다. 이 건물은 이미 존재하는 박물관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오늘날 기념품 상점, 카페, 화장실, 휴게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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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조바 볼라 프리데리크 쇼팽 생가 / 사진: Franciszek Mazur / AG
젤라조바 볼라의 쇼팽 생가 박물관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축・정원예술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생했던 여러 현상은 그만의 특별한 형식을 거쳐 성공적으로 박물관에 구현되었습니다. 이곳은 쇼팽이 살았던 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자 그의 음악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애국심과 국가적 상징이 중요했던 전간기 시대 분위기가 녹아있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 건축이 숭고한 역사적 장소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저자: Anna Cymer (2021년 9월 24일) / 번역: AL (2021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