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서 작업한 영화는 스콜리모프스키에게 서구권으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되었다. 감독의 제작 스타일을 비롯해 주연을 맡은 젊은 스타, 다큐멘터리 영화의 카메라맨으로 시작해 결국 아녜스 바르다 Agnès Varda, 장뤽 고다르, 오슨 웰스 Orson Welles, 알랭 로브그리예 Alain Robbe-Grillet, 크리스 마르케 Chris Marker, 모리스 피알라 Maurice Pialat와 같은 세계적인 영화 감독의 촬영 감독이 된 윌리 커란트 Willy Kurant 뛰어난 촬영 기술에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또한 영화에 보완된 크시슈토프 코메다 Krzysztof Komeda의 음악은 일부 시퀀스를 압도하기도 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과 베를린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에게 강력한 입지가 되었지만, 이는 서구에 한했다. 막상 조국인 폴란드에서는 정치적 검열과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작⟫과 거의 동시에 제작에 들어간 ⟪손들어! Ręce do góry⟫는 당시 폴란드 장관의 요청으로 베니스영화제 참가 조차 무산되었고, 폴란드 프리미어 상영은 취소되었다. 스콜리모프스키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 제논 클리슈카 Zenon Kliszka를 만나 이런 결정을 바꾸도록 설득하였지만, 결국 공산주의 현실과 충돌했다. 바르바라 홀렌데르 Barbara Hollender의 저서 ⟪바이다에서 코마사까지 Od Wajdy do Komasy⟫에 담긴 인터뷰에서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은 그 순간을 회상했다.
"제 영화를 가만히 내버려 둘 거라는 나이브한 생각을 헀습니다. ⟪손들어!⟫ 상영에 가해진 압력이 소련대사관에서 왔을거란 건 몰랐던 거죠. 영양가 없는 토론 끝에 결국 '이 영화판에서 내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라는 체념을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을 수 있었던 대답은 고작 '잘 가시오!'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서구권 영화계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고, 그 시발이된 작품 ⟪시작⟫은 그 첫 번째 정류장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