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조, 실, 매듭으로 읽는 폴란드 섬유예술의 역사
만약 우리가 공공 전시기관들의 수장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폴란드 인민공화국 시절에 수집된 수십 점의 예술 직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성주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부터 아르데코풍의 장식가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섬유를 매개로 예술 실험을 시도하였고, 마그달레나 아바카노비치의 국제적 성공을 계기로 한때 수많은 이류 추종자들이 뒤따라 등장하기도 했다.
1960년대 황금기를 맞은 섬유 업계는 1970년대까지 호황을 이어갔지만, 이후 급속히 쇠퇴하였다. 오늘날 직물은 거의 사라진 기법으로 여겨지는 전통 판화처럼, 보수적인 미술 아카데미의 울타리 안에서나 겨우 다른 표현 수단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예술가들은 이 매체를 때때로 되살리거나, 아예 주요한 도구로 삼기도 한다.
민속의 현대적 해석
자코파네 Zakopane의 전설적인 예술 유산은 주로 20세기 초 비트카치 Witkacy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보헤미안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이 도시는 또한 뛰어난 교육자들의 요람이기도 하다. 안토니 케나르 Antoni Kenar의 이름을 계승한 자코파네 조형예술학교 Zespół Szkół Plastycznych는 1870년대에 설립되었으며, 처음에는 민속 목공예 작가의 기량을 길러내기 위한 조각 학교로 출발했다. 전간기에 활동했던 카롤 스트리옌스키 Karol Stryjeński는 이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낸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종교 조각상을 깎던 포드할레 Podhale 지역의 소년들에게 현대 조각의 이상을 심어주었고, 지역의 장인 전통이 입체파적 조각 형식과 조화를 이루는 보기 드문 예술적 융합이 꽃피웠다. 이 정신을 이어받은 인물이 바로 안토니 케나르로, 그는 1950년대 말까지 학교 안에서 이러한 창의적 균형을 유지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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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시 브조조프스키 & 마리아 부야코바 / 《달리기 주자(달리기) Biegacze(Bieg)》(1956)
/ 캔버스에 자수 및 장식용 덧실 자수 기법 / 310×190cm / 사진: 바르샤바 스포츠관광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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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시 브조조프스키 Tadeusz Brzozowski는 이 학교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학교와 활발히 협력해 왔다. 《올리판트 Olifant》는 이러한 협력 관계에서 탄생한 가장 인상적인 결과물 가운데 하나이다. 브조조프스키가 디자인한 추상에 가까운 구성은 마리아 부야코바 Maria Bujakowa가 구현했으며, 그는 직물이 가진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눈부신 기술적 해법들을 선보였다. 두 사람의 협업은 멜버른 올림픽 기념해 열린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브조조프스키가 디자인하고 부야코바가 제작한 세 점의 직물은 현재 바르샤바 스포츠관광박물관 Muzeum Sportu i Turystyki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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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치에흐 사들레이 Wojciech Sadley / 《올림픽 고블랭 Gobelin Olimpijski》(1975) / 사진: 바르샤바 스포츠관광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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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치에흐 사들레이 Wojciech Sadley는 올림픽 공모전에 출품한 작가들 가운데 직물을 가장 독창적으로 활용한 예술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주로 실크에 회화를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했으며, 마리아 부야코바, 타데우시 브조조프스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만든 《올림픽 고블랭 Gobelin Olimpijski》은 특히 규모 면에서 가장 크고 인상적인 작품으로, 완성까지 20여 년이 걸렸다. 사들레이는 다른 매체에서 사용되던 표현 기법을 직물이라는 매체로 옮겨왔으며, 에바 타타르 Ewa Tatar는 그의 작품에 대해 "픽셀화된 이미지 구성은 당시 인쇄 기술과 보도 그래픽에서 받은 영감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하였다.
브와디스와프 하시오르 Władysław Hasior / 《바로크 아이콘 Ikona barokowa》(1968년 이전) / 아상블라주 / 노비송치 지역박물관 Muzeum Okręgowego w Nowym Sączu 소장
브와디스와프 하시오르 Władysław Hasior는 같은 시기 포트할레 지역의 민속 전통에 대해 또 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주워 모은 물건들을 활용해 아상블라주 assemblage 형식의 의례용 깃발을 제작했는데, 이 작업에는 기에렉 시대의 준 자본주의적 지방 문화가 다소 초현실적인 형식으로 반영되었다. 조악한 대량 생산품과 최신 전자기기가 뒤섞인 하시오르의 깃발은 동시에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코파네 인근 마을에서는 이 깃발이 마치 성당 행렬에 사용되는 깃발처럼 행진에 동원되기도 했다.
부정과 수용
마그달레나 아바카노비치 Magdalena Abakanowicz는 1960~70년대에 발표한 직물 작업을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추상적이고 입체적인 형태의 '아바칸 Abakan' 시리즈는, 당대 섬유 예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행사였던 로잔 섬유예술비엔날레에서 여러 차례의 수상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바카노비치는 이 시기를 자신의 예술 경력에서 지우려 했고, 조각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고자 했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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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칸은 나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죄처럼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되었다.
왜냐하면 직물 작업을 한다는 것은 예술계의 문을 스스로 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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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달레나 아바카노비치 / 《붉은 아바칸 Czerwony Abakan》(1969) / 사진: EFE/MG/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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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있어 직물이라는 매체에 대한 애착은 등 뒤에 비수를 맞는 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아바카노비치의 예술적 행보를 돌아보면, 이러한 태도는 다소 아쉬운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카롤리나 플린타 Karolina Plinta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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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바카노비치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페미니즘과도 거리를 두었으며, 자신의 작업에 담긴 보편적 가치를 유독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작업이 다시 조명받는 계기는 다름 아닌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 이러한 재평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루어졌고, 아바카노비치는 1970년대에 직물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자신이 섬유예술가가 아닌 조각가로 인식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아바카노비치에게 있어 직물과의 결별은 단지 작품 수용 방식의 차원을 넘어 예술적 발전 가능성까지 제한하는, 일종의 막다른 길과 같은 선택이었다. 직물로 만든 추상적인 '아바칸' 시리즈는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인 에바 헤세 Eva Hesse와 같은 예술가들의 작업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이후 마대와 수지, 그리고 전통적인 조각 재료인 석재 등을 사용해 만든 인간 형상 조각들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다소 구태의연하게 보이며, 과도한 비장미로 인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폴란드 현대미술의 정전을 새롭게 구성하던 '라스트르 Raster'의 창립 멤버들은 이 작품들에 '포르말리나Formalina (역자주: 포르말린에 절인 것처럼 시대착오적이고 생명력을 잃은 작품이라는 비판이 담긴 표현)'라는 멸칭을 붙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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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한 포대기 Becik erotyczny》(1974) / 마리아 피닌스카-베레시 / 사진: 라비린트 갤러리 보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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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Pinińska-Bereś, "Becik erotyczny", 1974, fot. materiały prasowe Galerii Labirynt
이와 비슷한 평가 기준에 따라 라스트르 그룹 소속 예술가들은 마초성이 강조된 낭만주의적 이미지에 경도된 예지 베레시 Jerzy Bereś의 작업에도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마리아 피닌스카-베레시 Maria Pinińska-Bereś는 그와 뚜렷이 대조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아바카노비치처럼 '더 남성적인' 상징체계로 도피하기보다, 오히려 분홍색, 직물, 가정적인 모티프와 같은 전형적인 '여성성'을 의도적으로 과장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아바칸은 직물 예술의 범주를 넘어서기 위해 '부드러운 조각'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지만, 피닌스카-베레시의 일부 작품은 굳이 그런 명칭 없이도 '부드러운 조각'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예컨대 《나의 사랑스러운 작은 방 Mój uroczy pokoik》은 작가 특유의 기법인, 부드러운 스펀지를 캔버스로 감싸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소형 부두아르 boudoir로, 분홍빛으로 물든 이 공간은 소녀적이면서도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피닌스카-베레시는 퍼포먼스에서도 이와 유사한 섬세한 표현 방식을 통해 주류에서 배제된 여성의 위치를 다루었다. 그의 퍼포먼스는 남편 예지 베레시의 작업에 대한 반론일 뿐만 아니라, 크라쿠프 아방가르드 운동의 흐름 속에서 전개되었으며, 타데우시 칸토르 Tadeusz Kantor의 극적인 퍼포먼스에도 참여한 바 있다. 1976년 발표한 피닌스카-베레시의 퍼포먼스 《연(鳶) 편지 List latawiec》는 칸토르의 1967년 작 《편지 List》에 대한 응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작업에서 거대한 봉투는 연으로 대체되었고, 도심의 인파 행렬은 크라쿠프 프롱드닉 Prądnik 들판에 홀로 등장한 작가 자신의 몸짓으로 치환되었다. 작가가 끌고 가던 연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관객의 눈앞에는 "내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przepraszam, że byłam, że jestem"라는 문구가 펼쳐졌다.
현대성의 폐허 위에 수놓는 이들
파울리나 오워프스카 / 《옥샤》 (2014) / 보라색 태피스트리 고블랭 / 사진: Jerry Birchfield / 클리블랜드 현대미술관 / Metro Pictures
피닌스카-베레시의 반항적인 태도에 공감하는 현대 여성 예술가들은 고블랭, 마카트카 makatka(역자주: 폴란드 가정에서 사용되던 전통 직물 벽걸이 장식)를 비롯한 다양한 직물 매체에 아이러니한 시선으로 접근한다. 예를 들어 알리차 비엘라프스카 Alicja Bielawska의 설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직물은 모더니즘 미학을 연상시키는 절제된 미니멀리즘 구조를 따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차가움을 덜고 익숙함과 안락함, 심지어 포근함까지 더한다.
율리타 부이칙 Julita Wójcik은 모더니즘 유산을 한층 더 분명한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일상적인' 기법과 상황을 자주 활용하는 그단스크 출신의 이 작가는, 2005~2006년 사이 사회주의 모더니즘 주거 건축물 중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면서도 그 거대한 규모로 인해 위압감을 주는 그단스크의 '팔로비에츠 falowiec' 축소 모형을 코바늘로 떠냈다. 수공예 방식으로 이 건축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장식용 소품처럼 변형시킨 것이다. 그 결과, 이 건물은 폴란드 인민공화국 시대의 장식장 위에 올려둘 법한 '쓸데없는 잡동사니 장식품 durnostojka'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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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나 오워프스카 Paulina Ołowska는 보다 추상적이고 시적인 방식으로 직물에 접근하는 작가이다. 그는 2014년 타트리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연약한 뮤즈들 Wątłe muzy》을 위해, 전시 장소인 박물관 분관의 이름을 따 《옥샤 Oksza》라는 제목의 고블랭을 제작했다. 이 건물은 자코파네 양식으로 지어진 여러 저택 가운데 하나이며, 해당 양식을 창안한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에비치 Stanisław Witkiewicz '비트카치'가 설계했다. 꽤나 기념비적인 인상을 주는 이 묵직한 고블랭은, 수십 년 전 로잔 섬유예술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한때 산업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체제 전환 이후 인구 유출과 함께 쇠퇴해 변두리로 밀려난 도시들의 지나간 시대를 기리는 일종의 추모 작업이기도 하다. 1970년대의 감성이 묻어나는 이 작품은, 직물 대신 타르누프 질소화학공장에서 수집한 플라스틱 폐기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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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셱 오르워프스키 / 《현관 바람막이 '비아트로와프' Wiatrołap》 (2013) / 《직물의 영광》(2013) 전시 전경, 바르샤바 자헹타국립미술관 / 사진: 자헹타국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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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물은 사회적 참여를 지향하는 예술의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프란치셱 오르워프스키 Franciszek Orłowski는 1990년대 비판적 예술 흐름을 계승한 작가로, 자신의 옷을 노숙인과 맞바꾸는 퍼포먼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바르샤바 자헹타 국립현대미술관 Zachęta Narodowa Galeria Sztuki 에서 열린 《직물의 영광 Splendor tkaniny》 전시를 위해 제작한 작품에서도 이러한 주제를 이어갔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커튼은 전시 제목이 암시하는 '영광'과는 거의 무관했으며, 관람객은 역사적이고 순전히 장식적인 직물로 구성된 전시장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노숙인의 옷으로 만든 이 커튼을 헤치고 지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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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드로진스카 / 《습작》 연작 /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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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드로진스카 Monika Drożyńska에게 자수는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시민으로서의 분노 혹은 순전히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의 자수 작업은 때로 꽃무늬 장식이 더해진 마카트카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기숙학교 여학생들이 '교양 수업'의 일환으로 만들던, 전통적 여성 가치가 투영된 자수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갤러리의 화이트큐브 공간에 미학적으로 전시된다. 자수는 경우에 해 따라 일종의 '반달리즘'으로도 이어지는데, 예컨대 작가는 '검은 시위(역자주: '검은 시위 Czarny Protest'는 2016년 폴란드에서 여성의 낙태권 제한에 반대하며 벌어진 전국적 시위로, 참가자들은 검은 옷을 입고 항의의 뜻을 표했다)' 참여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기차 칸 좌석 등받이에 자수로 새긴 적도 있다.
드로진스카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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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를 놓으면 뭔가 긴장이 풀려요. 화나고 속이 뒤집힐듯한 감정을 자수에 쏟아붓는 거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기도 해요. 저도 많은 사람들처럼 다양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자수는 그런 제 강박적인 행동들 중에서 가장 건강한 해서 수단이에요."
저자: 피오트르 홀리흐트 Piotr Policht (2021년 5월) | 번역: AL (2025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