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루의 연대를 향해
한국어 '소리'는 일본어에서 썰매라는 뜻을 가집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일본에서 연구하며 작품을 만드는 저로서는 'so-ri'라는 말에서 어슴푸레한 아침, 멀리서 눈밭을 헤치며 달려오는 썰매의 정경을 떠올립니다. 폴란드와 한국/일본의 7시간*의 시차를 뚫고 들려오는 전시장의 소리를 어떻게 온몸으로 느낄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일광절약 시간제 적용 시 시차
폴란드관의 전시 '정적 쾌락'은 전쟁 같은 현대사를 가진 광주에서 이루어지는 폴란드의 전시입니다. 현재 진행형인 전쟁이 일어나는 옆 나라이자 지난한 역사를 겪은 폴란드의 전시가 피로사회를 사는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풍요를 겪는 동시에 전쟁과 양극화가 심화되는 불안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전시를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저는 감히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이미 작품과 전시에 연루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술은 사회와 과학을 포함한 다른 장르들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브뤼노 라투르 Bruno Latour는 현장 연구를 통해 과학을 보는 다양한 시점이 사회를 좀 더 적극적으로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도나 해러웨이 Dona Haraway는 저마다의 시점과 실천을 적극적으로 짜깁기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미학적 문맥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와 관객이 가진 다양한 경험을 포함할 때 작품은 더욱 풍성해지고 살아있는 메시지로 자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관객의 감상은 작가가 작품을 제작할 때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작품의 메시지를 데려갑니다.
해당 없음을 뜻하는 영어의 약자 N/A를 한국어로 읽으면 - 슬래시 기호를 투명하게 읽는다면 - '나'가 됩니다. 개인이 보이지 않거나 존중되지 못할 때도 시점을 달리해 본다면 그 속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수많은 나에 대한 성찰, 작품 속에는 수많은 '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전시에는 다양한 '나'들이 등장합니다. 프셰미스와프 야시엘스키 Przemysław Jasielski의 기억하려는 사람과 기억되는 사람, IP 그룹 IP Group의 관찰하는 사람과 관찰당하는 사람, 알리차 클리흐 Alicja Klich의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마디나 마호메도바 Madina Mahomedova의 차별하는 사람과 차별당하는 사람, WRO 아트센터의 귀 기울이는 사람까지… 그 속에서 저는 많은 부분 자신을 포함한 다양한 당사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적극적으로 작품에서의 이야기를 자신의 상황과 연결해 보십시오. 재료나 공간의 밝기 같은 기본적인 요소부터 작품이 존재하는 형식이나 메시지와 같은 보다 복합적인 요소까지를 아우르는 '경험'에 여러분을 적극적으로 연루해 보십시오. 호불호가 나뉘는 것 또한 하나의 연루 방법입니다. 우리는 알고리즘의 진보로 듣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사회의 양극화는 실제로 잔혹한 현실을 만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온전히 겪을 수는 없지만 상상과 짐작하고 공감으로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 속 사건뿐 아니라 현재 일어나는 일에도 해당합니다.
작품에 연루된 경험은 신발 속 작은 돌멩이처럼 일상에 작은 균열을 만듭니다. 피로한 세상에서 연루된 경험은 사고의 여백이 되어 작품의 확장과 개인의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도 있겠지요. 연루의 느슨한 연대는 사회에 대한 물음을 작품이라는 형태로 창조한 제작자에 대한 공감이자 이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우리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자 하는 용기에 대한 응원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전시에 부치는 글을 관객들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로 대신합니다. 감상할 때 마음속 작은 '소리'로 자리하기를 바랍니다.
저자: 박현정 (홋카이도대학, 작가 / 2024년) / 편집: AL (2024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