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피에, 워비치, 카슈비를 넘어 건축까지: 폴란드 민속 종이 공예 가이드
폴란드의 여러 지역에는 저마다 고유한 장식 문양이 있다. 이는 특정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추상적 문양 또는 식물, 인물, 동물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종이를 오려 만든 이러한 장식은 각 지역을 상징하는 표식이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다. 폴란드의 전통 민속 종이 오리기 공예인 '비치난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다.
특정한 문양과 구도, 형상이나 실루엣을 종이로 오려 만드는 전통은 19세기 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속문화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 시기 폴란드에서는 종이로 만든 장식 커튼으로 창문을 꾸미는 '유행'이 퍼졌고, 가정의 여성들은 그 안에 장식적인 무늬를 오려 넣었다. 종이를 한 번 또는 여러 번 접은 뒤 일정한 방식으로 오려내면, 투각 형태의 대칭적인 구성이 완성된다. 이러한 종이 오리기는 추상적인 무늬뿐 아니라 꽃과 동물, 나아가 일상적인 장면까지도 표현할 수 있었다. 중요한 점은, 종이 오리기 공예가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폴란드만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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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비치 전통 종이 공예 (1909) / 사진: Polona.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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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농가의 창문에 종이로 오린 장식 커튼이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제작 방식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표면이 매끄럽고 윤기가 도는 색종이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서로 다른 선명한 색상의 종이를 조합하는 방식도 도입되었다. 구성 역시 점차 복잡해지며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비치난카 wycinanka는 양털을 자를 때 사용하는 가위를 날 부분으로 잡고 만드는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강철 가위의 탄성을 활용해 보다 정밀한 절단을 가능하게 한다.
농촌에서는 단색 또는 다색의 비치난카가 중요한 명절이나 의식을 앞두고 집을 꾸미는 데 사용되었으며, 벽이나 난로, 천장 들보에 직접 붙였다.
《폴란드 민속 종이 공예 Wycinanki ludu polskiego》 / 작가: 세베린 우지엘라 Seweryn Udziela / 사진: Polona.pl
이러한 작업은 주로 가정의 여성들이 맡았고, 제작 기술은 세대를 거쳐 전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민속 종이 오리기 공예는 점차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로 자리 잡았다. 색종이를 오려 판지나 흰 종이에 붙인 작품은 엽서와 초대장, 포스터 등으로도 활용되었다. 오랫동안 농촌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도시의 중산층도 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에는 화가이자 미술 비평가인 보이치에흐 게르손 Wojciech Gerson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비치난카 컬렉션을 수집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 공예의 특징적인 문양은 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에게 참고가 되며, 미술과 디자인은 물론 건축 분야에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 민속 비치난카는 농촌 가옥을 장식하는 용도로는 거의 사라졌으며(예외적으로 포들라시에 지역의 보이시키 Wojszki처럼 이 전통이 이어지는 마을도 일부 남아 있다), 대신 도시의 기념품이나 관광용 소품에 활용되는 장식 모티프로 자리 잡았다. 비록 그 의미와 쓰임은 달라졌지만, 지역마다 나타나는 차이는 여전히 뚜렷하게 구분되고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비치난카는 워비치 Łowicz, 오포치노 Opoczno, 루블린 Lublin, 쿠르피에 Kurpie, 카슈비 Kaszuby 등 여러 지역에서 중요한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폴란드 각 지역의 비치난카는 어떤 특징을 지니며, 서로 어떻게 다를까?
일반적으로 폴란드 민속 비치난카의 중심지로는 워비치가 널리 알려져 있다.
워비치 전통 종이 공예 (1909) / 사진: Polona.pl
이 지역에서는 비치난카가 가장 크게 발전해, 사람과 동물, 나무, 꽃 등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풍속적인 모습과 복합적인 구성으로 발전했다. 워비치 특유의 문양은 수십 년에 걸쳐 기념품과 생활용품, 그래픽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지역 전통은 지역 박물관과 야외 민속박물관을 통해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워비치 비치난카는 크게 코드라 kodra, 그비오즈다 gwiozda, 타시엠카 tasiemka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코드라는 흰색 판지 위에 붙이는 길쭉한 형태의 다색 풍속 장면이나 기하학적 구성으로, 그 안에는 동물과 사람, 식물의 형상이 담긴다. 그비오즈다는 가장자리가 불규칙한 톱니 모양을 이루는 원형 오리기 작품으로, 추상적이거나 식물적인 무늬를 바탕으로 하며 때로는 수탉과 같은 동물의 형상이 함께 들어가기도 한다. 하나의 대칭축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타시엠카는 위쪽에서 다채로운 원형 장식으로 묶인 두 가닥의 길게 늘어진 리본 형태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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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피에 전통 종이 공예 (1914) / 바르샤바 산업·농업 박물관 소장 민속 예술품 / 사진: Polona.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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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난카가 특히 독특한 형태와 규모로 발전한 또 다른 지역은 쿠르피에이다. 이 지역은 두 개의 하위 지역으로 나뉘며, 각각 고유한 미감을 형성해 왔다. 쿠르피에 비아웨 Kurpie Białe의 비치난카는 색채가 풍부하고 여러 겹으로 덧붙이는 방식이 특징이며, 아래로 늘어지는 리본 장식인 '포르트키 portki'가 달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모티프인 '지엘코 zielko'는 여러 갈래로 구불구불 뻗어나가는 장식적인 줄기를 지닌 화분 식물을 연상시키는 구성으로, 그 '가지'에는 꽃이나 수탉 등 다양한 작은 오리기 장식이 더해지기도 한다.
한편 푸슈차 지엘로나 Puszcza Zielona 지역의 비치난카 가운데서는 이른바 '렐루예 leluje'가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단색으로 이루어진 구성으로, 커다란 나무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띠며 그 수관에는 사람과 동물, 식물의 형상이 나타난다. 나무 아래 부분 역시 장식적으로 구성되는데, 양옆에는 꽃과 수탉, 비둘기 등의 모티프가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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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포치노 전통 종이 공예(1896) / 사진: Polona.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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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치에흐 게르손은 마조프셰 Mazowsze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하며 비치난카 컬렉션을 수집했는데, 실제로 폴란드에서 가장 큰 이 지역 곳곳에는 이러한 수공예가 발달한 중심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마조프셰 서부와 인접한 우치주 일부 지역, 즉 오포치노와 라바 마조비에츠카 Rawa Mazowiecka 일대이다. 이곳의 각 도시와 주변 마을들은 저마다 고유한 비치난카의 유형과 문양, 형태를 지니고 있다.
오포치노 일대에서 가장 특징적인 형태는 이른바 '오포치노 사각형'으로, 정교하게 오려낸 투각 장식과 촘촘한 톱니 모양의 가장자리, 구불구불 이어지는 화려한 식물·동물·기하학적 문양이 어우러진다. 일부는 한 장의 종이로 완성되기도 하고, 또 다른 작품들은 점점 더 작은 오리기 요소들을 겹겹이 붙여 장식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시에라치 Sieradz 지역에서는 서로 다른 크기와 색상의 조각을 이어 붙여 다채로운 구성을 만드는 비치난카가 특히 널리 퍼졌다. 이 지역의 종이 공예 가운데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모티프는 이른바 '쿨로시가 달린 마주리 mazury z kulosami'이다. 이는 정사각형이나 원형의 오리기 작품 아래쪽에 세 개의 단색 투각(透刻) 리본이 늘어져 있는 형태로, 각 리본의 끝에는 작은 정사각형이나 꽃 모양의 오리기 장식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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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블린 전통 종이 공예 / 작가: 가브리엘라 고잔트 Gabriela Gorzandt / 사진: 루블린 브라마 그로츠카 센터 Ośrodek Brama Grodzka w Lubli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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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 지역의 비치난카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고, 소박하면서도 고유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흔적이 지금까지도 일부 남아 있습니다. 당시 농촌에서는 대부분 글을 읽지 못했지만, 가위를 이용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대장장이가 만든 가위를 사용해 본을 따지 않고 '기억'에 의존해 오려냈습니다. 비치난카는 한 가지 색의 종이로 만들어졌는데, 주로 '회색 종이'라 불리는 종이가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붉은 비트나 숯, 혹은 세탁용 염료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색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루블린의 민속 예술가 안나 스와프친스카 Anna Słabczyńska는 브라마 그로츠카 문화센터 Ośrodek Brama Grodzka에서 비치난카에 대해 위와 같이 회고했다. 루블린 지역의 비치난카는 워비치나 쿠르피에 지역의 것에 비해 다소 소박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섬세함과 정교함이 살아 있다. 로제트와 별, 원형을 떠올리게 하는 단색 구성 속에는 사람과 동물, 꽃의 형태가 어우러져 있다. 이러한 비치난카는 교회에서 촛대 아래에 놓는 장식용 받침, 즉 냅킨 등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카슈비 자수 Kaszëbsczi wësziwk
카슈비 전통 종이 공예 문양이 들어간 티셔츠 / 사진: czec.pl
카슈비 지역의 문양은 주로 자수로 알려져 있지만, 꽃과 곤충을 중심으로 한 모티프는 종이 오리기와 도자기, 가구 장식 등에서도 널리 활용된다. 이러한 문양은 여러 가지 색조의 파란색, 검정, 빨강, 초록, 노랑 등 다섯 가지 색만을 사용해 일관되게 만들어진다. 마조프셰 지역의 비치난카가 사람과 동물을 폭넓게 표현하는 것과 달리, 카슈비 지역의 공예는 꽃 모티프를 중심으로 하며, 지역 예술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구성을 발전시켜 왔다.
제비꽃, 백합, 해바라기, 장미, 튤립이 주요 모티프를 이루고, 때로는 로제트나 하트, 태양 문양이 함께 더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카슈비 장식 문양은 둥글고 섬세한 형태와 색채로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각각의 색은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세 가지 파란색은 카슈비 지역의 호수와 하늘, 바다를 상징하고, 노란색은 태양과 익어가는 밀을, 초록색은 숲을, 검정색은 파종을 준비한 땅을 의미한다. 붉은색은 고향을 지키기 위해 흘릴 각오가 된 피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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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위스톡 공과대학교 도서관 / 사진: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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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예술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폴란드 인민공화국 시기에는 민속 예술을 연상시키는 물건들이 가정에 자리 잡는 데 체펠리아 Cepelia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스타일이 별다른 강요 없이도 여전히 널리 사랑받고 있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비치난카 문양이 카펫과 가방, 가구 등에 적용되어 국제 박람회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폴란드 내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는 폴란드관이 큰 화제를 모았다. 마르친 모스타파 Marcin Mostafa, 나탈리아 파슈코프스카 Natalia Paszkowska, 마치에이 부르달스키 Maciej Burdalski, 미코와이 몰렌다 Mikołaj Molenda, 조피아 피헬스카 Zofia Pichelska, 마치에이 시첵 Maciej Siczek, 마치에이 발치나 Maciej Walczyna, 그리고 이들과 협업한 보이치에흐 카코프스키 Wojciech Kakowski는 합판 외벽에 민속 비치난카를 연상시키는 투각 무늬를 적용한 비정형 건축물을 설계했다.
이러한 영감은 공공 건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아위스토크 공과대학교 현대교육센터 Centrum Nowoczesnego Kształcenia Politechniki Białostockiej(설계: Group-Arch)와, 1970년대 '큐브형 주택'을 개조해 2012년에 완성된 포즈난의 단독주택(설계: Kilkoro Architekci)에서도 비치난카에서 비롯된 디자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