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끝내 구매자를 찾지 못했다. 전시 종료를 앞둔 1894년 4월 24일 아침, 포트코빈스키는 칼로 캔버스를 찢어 작품을 훼손했다. 이 결정의 이유에 대해 화가 본인은 끝내 명확한 설명을 남기지 않았고, 모호한 언급만 전해진다. 알렉산드르 시비엥토호프스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관객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판단한 뒤, 전시가 끝난 후 작품을 철거해 보관하는 대신 좌절된 자신의 기대를 드러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한편 빅토르 고물리츠키 Wiktor Gomulicki가 전한 화가의 고백에 따르면, 작품을 파괴하는 행위는 그에게 매우 고통스럽고 괴로운 경험이었다. 찢어지는 캔버스의 소리는 비명처럼 들렸고, 그 아래로 드러난 나무 지지대는 마치 뼈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곧이어 화가의 결정이 작품 속에 묘사된 여성과 관련된 소문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빠르게 퍼졌다. 포트코빈스키가 그 여성에게 일방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작품의 파괴와 화가의 이른 죽음은 이러한 추측을 더욱 부추겼고, 전설에는 자살이라는 선정적인 요소까지 덧붙여졌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는, 캔버스에서 여성의 형상이 그려진 부분에 집중적으로 남아 있는 칼자국이 거론되었다. 이로 인해 여성은 화가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는 해석이 제기되었다. 이 신비로운 감정의 대상은 바르샤바 인근 흐솅스네 Chrzęsne 에 위치한 빈첸티나 카르스카 Wincentyna Karska의 궁전에서 여름을 보내던 중 화가가 알게 된 에바 코타르빈스카 Ewa Kotarbińska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녀는 실제로는 흑발이었으나, 헬레나 키니오르스카 Helena Kiniorska는 회고록에서 그의 가족이 《광란의 환희》에 등장하는 여성과의 유사성을 주장하며 포트코빈스키에게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에 격분한 화가는 분노의 순간에 작품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역사와 그를 둘러싸고 형성된 전설들은 19세기 말까지도 예술이 얼마나 강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시간이 흐르며 작품 자체와 긴밀하게 얽히게 되었고, 동시대인들에 의해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예술가와 보수적인 시민 계층, 즉 예술의 깊은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는 속물적 부르주아 사이의 갈등을 부각하기 위해 다양한 수사적 장치가 동원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광란의 환희》를 스캔들이며 풍속을 해치는 작품으로 규정한 비난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비평가와 대중의 대다수는 이 작품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화가의 기량과 관련한 기술적 결함이 지적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중 예외에 해당하는 것이 《프셰글롱트 티고드니오비 Przeglądzie Tygodniowy》에 실린 평론에서 스테판 라우리시에비치가 제기한 색채에 대한 유보적 견해였다. 그러나 보다 흔했던 것은 격앙된 찬탄과 전폭적인 지지를 담은 반응이었다. 이와 같은 찬사의 한 예로, 카지미에시 테트마예르 Kazimierz Tetmajer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혼돈 속으로,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성운의 와류 한가운데로 던져진 듯한, 날뛰는 거대한 말, 그 어떤 묵시록적 짐승 위에 나체의 여인이 반쯤 몸을 뉘고 있다. 그녀는 두 팔로 말의 목을 휘감은 채 얼굴과 가슴, 몸통을 밀착시키고, 경련하듯 다리로 말의 옆구리를 조여 온다."
카지미에시 테트마예르, 〈포트코빈스키의 그림 Obraz Podkowińskiego〉, 《쿠리에르 코지엔니 Kurier Codzienny》, 1894년 제76호
이처럼 장황하고 시적인 묘사가 이어진 뒤, 화가에 대한 찬사와 존경의 말이 덧붙고 그의 작품은 당대 최고의 예술적 성취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이 작품에서는 때때로 황소의 모습으로 변신한 제우스가 에우로파를 납치하는 신화와의 연관성이 거론되었으며, 여성의 형상은 아마존이나 비너스에 비유되기도 했다. 또한 《광란의 환희》은 본능과 욕망이 지닌 파괴적 힘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해석되었다. 악마적인 말에 실린 여성은 의지와 이성을 압도하는 에로틱한 열정에 사로잡힌 존재로 이해되었다. 평론가들은 당시의 시대정신과 작품의 문체에 걸맞은 과장된 어조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것은 감각적 도취의 광란이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전 시대의 고전적·중세적·철학적이며 방탕한 광란과는 전혀 다르다. 또한 만프레드 Manfred나 에르나니 Ernani, 롤로 Rolla를 실신에 이르게 하는 낭만주의적 광란도 아니다. 여기서의 광란은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파괴적 광기, 즉 살인적이거나 자살적인 광기와 직접 맞닿아 있다."
우르바누스 Urbanus, 〈광란: 브와디스와프 포트코빈스키의 작품 세계 Szał.Obraz Władysława Podkowińskiego〉, 《크라이 Kraj》, 1894년 제10호
오늘날 이 작품은 세기 전환기 문화 속 데카당스적 경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로 평가된다. 다만 현대의 관객에게는, 당시의 도덕적 금기를 과감히 넘나들었던 이 작품의 대담한 성격이 대체로 간과되곤 한다.
참고 문헌:
- 《폴란드 회화의 상징주의 1890~1914 Symbolizm w malarstwie polskim 1890-1914》(1997) | 편집: 아그니에슈카 모라빈스카 Agnieszka Morawińska | 바르샤바
- 《화가를 논하다: 1890~1918년 폴란드 미술비평 선집 Teksty o malarzach. Antologia polskiej krytyki artystycznej 1890-1918》(1976) | 편집: 비에스와프 유슈착 Wiesław Juszczak | 바르샤바
- 《폴란드 회화: 모더니즘 Malarstwo polskie. Modernizm》(1977) | 저자: 비에스와프 유슈착 | 바르샤바
저자: 마그달레나 브루벨스카 Magdalena Wróblewska (2010년 12월) | 번역: AL (202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