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역사에 새겨진 말의 이름들
폴란드의 역사는 인간의 이름으로 남았지만, 그 곁에는 늘 말이 있었습니다. 전쟁과 이동의 순간뿐 아니라 문학과 영화 속에서도 말은 인간의 곁에서 기억과 상징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폴란드 역사에 각인된 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말이 함께 만들어온 시간을 들여다봅니다.
프워트카 Płotka
안제이 삽코프스키 Andrzej Sapkowski 컬트적인 사가 《위쳐 Wiedźmin》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프워트카를 모를 리 없을 겁니다. 프워트카는 리비아의 게롤트가 언제나 곁에 두었던 가장 충실한 동반자로, 밤색의 암말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평생 단 한 마리의 말만을 타고 다닌 것은 아닙니다. 말이 죽을 때마다 그는 외형이 비슷한 다른 말로 바꾸어 탔고, 그때마다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그 결과 프워트카는 특정한 한 마리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마리의 말을 통칭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Picture display
standardowy (864px desktop)
게임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 스틸컷 / 사진: CD Projekt
Picture image
wiedzmin-3-geralt-na-koniu_121_webp.jpg
이러한 설정은 종종 게롤트의 동료들을 혼란스럽게 했고, 친구이자 음유시인인 단델라이언의 농담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작품 속에서 게롤트가 새 말을 타게 될 때마다, 단델라이언은 빈정대는 어조로 그 말을 '프워트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고, 게롤트는 이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위쳐 The Witcher》에서도 프워트카는 여러 말이 연기했습니다. 시즌 1에서는 제우스가, 시즌 2와 3에서는 검은 말 헥토르가 등장했고, 헨리 카빌 Henry Cavill은 헥토르와 특별한 유대를 맺었다고 전해집니다. 안타깝게도 이 말은 2025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Picture display
standardowy (864px desktop)
드라마 《위쳐》(2019) 스틸컷 / 원작: 안제이 삽코프스키 / 사진: Netflix
Picture image
the_witcher_netflix_18.jpg
카슈탄카 Kasztanka
20세기 폴란드 역사에서,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Józef Piłsudski 원수의 말이었던 카슈탄카만큼 널리 알려진 동물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Picture display
standardowy (864px desktop)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와 카슈탄카 Józef Piłsudski z koniem Kasztanką》(1928) / 보이치에흐 코삭 Wojciech Kossak / 사진: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Picture image
pilsudski_na_kasztance_mnw.jpg
키가 작은 밝은 밤색 암말 카슈탄카는 1914년 폴란드 군단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본래 전투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던 카슈탄카는 매우 예민하고 겁이 많은 성격으로 군중과 소음을 싫어했고, 포병의 불길에도 두려움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고된 시간을 견뎌내며, 폴란드가 독립을 되찾을 때까지 피우수트스키의 곁에서 폴란드 군단과 함께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열병식이나 피우수트스키 원수의 명명축일 기념식과 같이 국가적·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행사에서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평소에는 민스크 마조비에츠키 Mińsk Mazowiecki에 주둔한 기병부대 제7 루블린 우완 연대 7. Pułku Ułanów Lubelskich의 보살핌 아래 지냈습니다.
카슈탄카가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인 것은 1927년 독립기념일 열병식입니다. 그날의 모습을 지켜본 한 장군은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남겼습니다.
"붉은 기가 감도는 황금빛 털과 거의 분홍빛에 가까운 흰 무늬를 지닌, 작지만 품위 있는 카슈탄카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고귀하면서도 과하게 치켜들지 않은, 전형적으로 여성적인 머리를 이따금 들어 올렸다가 부드럽게 다시 내리곤 했다 [...]. 카슈탄카 부인은 위엄과 품격을 갖춘 존재였다."
그러나 막사로 돌아가는 수송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등 부상을 입고 말았고, 최고의 수의외과 의사들이 불려왔지만 치료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1월 23일 새벽 숨을 거둔 카슈탄카는 이후에 박제로 제작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습니다.
Picture display
standardowy (864px desktop)
엘 파소 / 사진: Zofia Raczkowska / bazakoni.pl
Picture image
el_paso_kon_.jpg
폴란드산 말을 키우거나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엘 파소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야누프 포들라스키 Janów Podlaski 국립 말 목장에서 태어난 그는 경주마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큰 금액을 제시해도 주인들이 판매를 거부하면서, 엘 파소는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81년, 미국의 사업가 아먼드 해머 Armand Hammer가 야누프 포들라스키 말 목장과의 거래를 성사시키며 무려 100만 달러를 지불했습니다. 이 금액은 오랜 기간 말 경매 역사상 세계 최고가로 기록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해머가 단순한 말 거래가 아니라 사업적 목적을 가지고 폴란드를 방문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그는 폴란드 인민공화국 정부와의 협력을 모색하며, 미국 자본을 활용한 광산과 공장 건설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살 수 없는 말'로 알려졌던 엘 파소의 판매는 이러한 폴란드-미국 협력 구상의 연장선에서, 당국의 압력 아래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Picture display
standardowy (864px desktop)
영화 《로트나》(1959) 스틸컷 / 감독: 안제이 바이다 / 사진: Film/Forum 아카이브
Picture image
lotna_wajda_forum-0429023408.jpg
아름다운 백마 로트나는 폴란드 문학과 영화에서 잘 알려진 존재입니다. 보이치에흐 주코프스키 Wojciech Żukrowski는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배경으로 한 단편에서 로트나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이 작품은 이후 안제이 바이다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이야기 속 로트나는 우연한 계기로 폴란드 우완 기병대 소대장의 말이 되는 아라비아 혈통의 암말로, 첫 등장부터 로트나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세상에, 저런 말이 있다니! 체구는 비교적 작았지만, 아름답게 휘어진 목과 불타는 눈빛, 그리고 기개로 타오르는 눈을 지닌 암말이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로트나를 종종 여성에 비유하며 그의 아름다움을 찬미합니다. 로트나의 매력에 넋을 잃은 채, 다음 주인들을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속으로는 그를 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로트나는 그 누구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탄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빠른 죽음입니다. 많은 독자와 관객에게 로트나는 낭만적인 가치와 이상에 대한 집착을 상징합니다. 그녀 탄 병사들이 하나씩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는, 이미 힘을 잃은 과거의 세계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암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