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림, 전통을 넘어 다시 벽으로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특별한 수공예 직조 방식이 지금 다시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수 세기 동안 킬림은 농가의 오두막에서부터 귀족의 저택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사회 계층 모두에게 사랑받았다는 점도 놀랍지만, 그것이 킬림의 유일한 특징은 아니다. 이 직물이 지닌 이중적인 성격은 본래의 용도에서도 드러난다. 보온은 킬림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텐트, 오두막, 가정집을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킬림은 처음부터 장식의 역할도 함께 해왔다. 직조된 무늬는 실내를 꾸미는 장식으로 활용되었으며, 벽에 걸어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바닥이나 긴 의자, 궤짝 같은 가구 위에 펼쳐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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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림 올 / 사진: instagram.com/kilim_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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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운동이 실용 예술을 포함한 예술 전반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그 영향은 직조 분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무늬의 킬림 제작이 꾸준히 이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작가들이 실험적인 구상과 문양을 가진 직물 제작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직조 디자인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표현 형식의 스펙트럼이 크게 확장되었고, 이러한 다양성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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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에서 온 '킬림 klim'이라는 명칭은 17세기 중반부터 폴란드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폴란드 전통에서 기원한 양면 장식 직물로, 양모로 짠 씨실과 주로 아마섬유로 만든 날실을 사용해 직기에서 평직 방식으로 손수 직조된다. 그보다 앞서 이 직물은 구니아 gunia 또는 데르카 derka로 불렸으며, 이 직조 기술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슬라브 지역 중세 초기에 뿌리를 둔 지역 전통으로 여겨졌다."
Author
- 모니카 코발칙 Monika Kowalczyk, 《폴란드 킬림이라는 현상》 전시 큐레이터
2024년 여름과 가을, 우츠 중앙섬유박물관 Muzeum Włókiennictwa w Łodzi에서 열린 《폴란드 킬림이라는 현상 Fenomen polskiego kilimu》 전시에서는 우츠 중앙섬유박물관의 소장품과 킬림 애호가이자 수집가인 미술사학자 피오트르 코르두바 Piotr Korduba 교수의 개인 소장품을 포함해 약 90점에 달하는 킬림이 소개되었다. 관람객들은 100여 년 전에 제작된 직물부터 최근에 완성된 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킬림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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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킬림이라는 현상》 전시 현장 / 사진: Anna Cy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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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는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정치 체제가 전환되던 시기, 폴란드 사회는 소비와 각종 물자의 손쉬운 접근성에 열광하며, 값싸고 질 낮은 제품까지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때의 열기는 이미 사그라들었다. 오늘날 폴란드인들은 다시금 수공예, 창작자의 손길이 깃든 작품, 독창적이고 개성이 돋보이는 품질 좋은 물건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유명 디자이너의 프로젝트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도시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디자인, 도예, 직조 같은 기술을 배우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분야 중 하나가 바로 킬림이다. 킬림은 디자인 박람회나 시장에서도 큰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이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작업실들도 생겨나고 있다. 더 이상 벽을 따뜻하게 덥힐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도시 아파트의 벽에 킬림 하나쯤은 걸려 있어야 '감각 있는 공간'이라 여겨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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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킬림이라는 현상》 전시 현장 / 사진: Anna Cy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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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폴란드에서는 디자이너, 디자인 생산자,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업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주도로 '누프 현대수공예협회 Stowarzyszenie Nów. Nowe Rzemiosło'가 설립되었다(역자주: 폴란드어 'nów'는 삭, 즉 달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 협회는 단순히 디자인을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에서 활동하는 창작자와 장인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누프의 창립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립 취지를 밝혔다.
Text
"오늘날, 무분별한 대량 소비와 더 많은 이윤만을 좇는 탐욕으로 피폐해진 세계 속에서, 수공예는 새롭고 창조적인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마치 달이 삭에서 다시 차오르듯이 말이다. [...] 장인의 전문 분야와 관계없이, 현대 수공예의 핵심은 한 사람이 생산의 전 과정을 직접 통제한다는 점에 있다. 수공예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과 달리, 제작자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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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비에초렉 《균열 Rozdarcie》(2017) / 사진: robertwieczorekart.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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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프 현대수공예협회'에 소속된 서른여 명의 장인과 작업장 가운데 일부는 평소 직기에 앉아 작업하거나, 다양한 직조 기술을 사용해 직물을 만들어낸다. 비아위스토크에 위치한 직조 작업장 '스플로타리움 Splotarium'의 설립자 베아타 팔리콧-보로프스카 Beata Palikot-Borowska는 1990년대 중반부터 포들라시에 Podlasie 지역의 섬유 산업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직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믿으며, 심신을 안정시키고 긴장을 푸는 동시에 직조 틀 사용법도 익힐 수 있는 워크숍도 운영하고 있다. 베아타 비에트신스카 Beata Wietrzyńska는 브랜드 '인 위브 In Weave'의 창립자이자, 장식용 직물, 가정용 텍스타일, 의류용 소재 등을 제작하는 작가로, 직조 분야의 장인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야쿱 시비엥치츠키 Jakub Święcicki 역시 비슷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텍스타일과 컴퓨터 자수 디자인 작업을 한다. '노트 Knot' 컬렉션에서는 매듭 기법인 마크라메를 이용해 대형 러그를 제작하고 있는데, 그는 수공예 기법이 키치하고 지나치게 장식적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말한다. 로베르트 비에초렉 Robert Wieczorek은 오래된 코바리 카펫 공장 Fabryka Dywanów Kowary에서 가져온 양모를 사용해 전통 직조 기법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그는 직조를 장인 기술이자 동시에 예술로 여기며 대형 직조 예술 오브제를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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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트 스튜디오 《블루트 blut》 / 사진: Karolina Sałajczyk, 레스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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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 국립미술원을 졸업한 도미니카 가츠카 Dominika Gacka와 율리아 피에카르스카 Julia Piekarska는 스튜디오 '레스트 REST'의 공동 설립자로, 직조 작업은 물론 새로운 아이디어, 디자인 방향, 표현 방식 등을 실험하고 탐색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직조 기법을 바탕으로 환경에 최대한 친화적인 천연 소재만을 사용해, 감각적이고 풍부한 질감의 직물을 만들어낸다. 이들이 진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레스트키 Restki(역자주: 폴란드어로 자투리를 뜻한다)'는 실 자투리와 폐기물을 활용해 견고한 신소재를 개발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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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Basen》 / 사진: 타타루가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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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지아 레나르트 Jadzia Lenart와 빅토리아 포돌레츠 Wiktoria Podolec는 지금처럼 킬림이 대중적이지 않았던 2017년에 직조 작업장 '타타루가 Tartaruga'를 설립했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직조 기법에 매료된 두 사람은 킬림과 마카트카 makatka를 짜기 시작했다. 이들은 변화하는 세계에 반응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미감을 담은 현대적인 무늬를 디자인하고자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다. 제품 제작에는 자투리 실과 남은 실, 재활용 면사 등 다양한 재료를 기꺼이 활용하며, 사람과 환경 모두에 안전한 식물성 염료를 사용한다. 이들이 만든 킬림은 화사하고 다채로우며, 때로는 추상적이면서도 단순하고 명확한 형태를 띤다. 타타루가 스튜디오의 작업은 직조 기법에 관한 관심을 환기할 뿐 아니라, 킬림이 현대 실내 공간의 요소로 자리 잡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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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롯 Splot'은 타타루가 스튜디오 설립 3년 뒤인 2020년에 탄생한 브랜드이다. 창립자인 프셰미스와프 체팍 Przemysław Cepak은 대량 생산의 시대 속에서 킬림이 지닌 아름다움과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고귀한 수공예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 다시 일상 공간으로 불러오고자 했다. '스플롯'의 킬림은 숙련된 직조 장인들이 직접 짜며, 에드가르 봉크 Edgar Bąk, 조피아 스트루미워 Zofia Strumiłło를 비롯한 저명한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도안을 복원해 제작하기도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들의 작품을 단순히 기억 속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실물 제품으로 재탄생시켜 다시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조피아 스트리옌스카 Zofia Stryjeńska, 유제프 차이코프스키 Józef Czajkowski, 마리아 부야코바 Maria Bujakowa의 도안으로 만든 킬림은 스플롯의 손을 거쳐 오늘날 다시 직조 작업장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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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폴레, 벽걸이 카펫 / 사진: Topole.art.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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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림에는 전통과 현대성이 특히 잘 어우러지는 직조 기법이 사용된다. 비록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남아있는 오래된 기술이지만, 이를 통해 오늘날의 감각과 취향, 감수성에 어울리는 매우 현대적인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마주리의 심장부'에 산다고 소개하는 안카 도브진 Anka Dobrzyn과 카시카 도브진 Kaśka Dobrzyn 자매는 '토폴레 Topole'라는 브랜드를 운영한다. 이들은 리넨, 면, 재활용 양모와 같은 천연 소재만을 사용해 다양한 크기의 킬림을 짜며, 단색부터 다채로운 색감, 추상적이거나 구상적인 디자인(특히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 많다), 미니멀하거나 섬세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작품까지 폭넓게 선보인다. 토폴레의 킬림은 벽에 걸 수도 있고 바닥에 깔 수도 있다. 촘촘하게 짜여 내구성이 높기 때문에 러그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하며, 실용적인 용도는 물론 장식용 예술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한편, '빔비 데코 Bimbi Deco' 작업장에서는 킬림 방식으로 짠 쿠션을 제작하고 있으며, '킬림 올 Kilim All'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톨라 오흐니오 Tola Ochnio는 질감이 도드라지는 소형 킬림과 벽걸이용 마카트카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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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비 데코 / 사진: instagram.com/bimbi_d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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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스플롯'의 창작자들은 킬림 기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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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림을 만드는 과정에는 엄청난 인내와 집중력, 정밀함이 요구됩니다. 1제곱미터의 직물을 짜는 데 일주일이 걸립니다. [...] 같은 빵이 두 개 있을 수 없듯, 같은 킬림도 세상에 단 하나뿐입니다. 각각의 직물은 유일무이한 예술 작품인 것입니다."
실용적인 용도든 장식적인 용도든, 대형이든 소형이든, 오늘날의 킬림은 형식과 문양 면에서 놀라울 만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완성에 들이는 방대한 노동과 시간은 깊은 존경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저자: 안나 치메르 Anna Cymer (2025년 7월) | 번역: AL (2025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