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제이 바이다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다섯 가지
폴란드 영화의 거장 안제이 바이다의 작품 세계는 수십 년 동안 폴란드 영화의 수준과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해왔으며, 그의 영화들은 전 세계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났다. 폴란드 출신 오스카 수상 감독 안제이 바이다에 관한 다섯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한다.
화가를 꿈꾸던 청년, 영화의 거장이 되다
안제이 바이다의 예술 여정은 영화 촬영장이 아닌 화실의 이젤 앞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1946년, 영화 데뷔보다 5년 앞서 크라쿠프 국립미술원에 입학해 학우들과 함께 초현실주의와 추상 회화를 그렸고, 학생 예술 동아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미술원을 졸업하지 않았다. 입학 3년 만에 우츠 국립영화학교로 옮겨 연출을 공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미 여러 편의 영화를 연출한 뒤인 1960년에야 정식으로 학업을 마쳤다. 졸업 작품을 끝낼 시간을 내지 못했던 탓이다.
안제이 바이다는 자신이 좋아하던 그림들에서 화면 구성의 영감을 얻었고, 그 영향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의 영화에는 안제이 브루블레프스키 Andrzej Wróblewski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카날 Kanał》, 《재와 다이아몬드 Popiół i diament》), 야첵 말체프스키 Jacek Malczewski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장면들(《결혼식 Wesele》, 《자작나무 숲 Brzezina》), 그리고 얀 마테이코 Jan Matejko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결혼식 Wesele》)을 찾아볼 수 있다.
창작 과정에서 그의 곁을 늘 지킨 것은 스케치북이었다. 그는 영화 제작에 활용할 스케치를 자주 그렸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구상을 제작진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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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악령들》 공연 리허설 중인 안제이 바이다 / 크라쿠프 스타리극장 / 1971년 / 사진: Wojciech Plewiński /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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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zej Wajda na próbie przedstawienia "Biesy" według Fiodora Dostojewskiego, 1971, Teatr Stary w Krakowie, fot. Wojciech Plewiński /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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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철의 인간》 촬영 중인 안제이 바이다 / 사진: Maciej Billewicz /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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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는 뛰어난 작품성뿐 아니라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도 영화사에 이름을 남겼다. 단편 데뷔작 《나쁜 소년 Zły chłopiec》(1951)부터 마지막 작품 《애프터이미지 Powidoki》(2016)에 이르기까지, 그는 무려 65년 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 기간 동안 그가 연출한 영화는 거의 60편에 달한다. 평균적으로 매년 한 편씩 영화를 만든 셈이다. 때로는 한 해에 여러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1976년에는 《그림자의 선 Smuga cienia》와 《대리석 인간 Człowiek z marmuru》를, 1979년에는 《빌코의 아가씨들 Panny z Wilka》와 《지휘자 Dyrygent》를 선보였다.
또한 10여 편의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다. 일부 작품에서는 자신의 삶과 예술적 영감, 영화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고, 다른 작품들에서는 폴란드 인민공화국 PRL 시기와 폴란드 영화의 역사를 조명했다.
또한 그는 많은 작품에서 감독뿐 아니라 각본가로도 참여했다. 《나스타자 Nastazja》(1994)와 《스위트 러시 Tatarak》(2009)는 기존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다. 반면 《모든 것을 팝니다 Wszystko na sprzedaż》(1969)는 창작 시나리오를 토대로 제작되었으며, 어떤 작품은 아예 정식 시나리오 없이 완성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작나무 숲 Brzezina》(1970)이다. 이 작품은 야로스와프 이바슈키에비치 Jarosław Iwaszkiewicz의 단편소설과 배우들의 즉흥 대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폴란드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다
폴란드 영화학파 운동의 주역《카날》(1957)과 《재와 다이아몬드》(1958)는 폴란드 영화학파 운동을 대표하는 초기 작품들이다. 《카날》은 바르샤바 봉기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전투가 한창인 모코투프 지구에서 시내 중심부로 탈출하기 위해 하수도를 통과하는 봉기군의 여정을 따라간다. 《재와 다이아몬드》는 예지 안제예프스키 Jerzy Andrzejewski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반공 활동가가 폴란드 노동자당 PPR 서기 암살 임무를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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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니에슈카 홀란트의 얼굴들 Twarze Agnieszki Holland》 수록 사진 / 왼쪽부터 안제이 주와프스키 Andrzej Żuławski, 안제이 바이다 Andrzej Wajda,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Agnieszka Holland,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ński, 리샤르트 부가이스키 Ryszard Bugajski, 크시슈토프 키에실로프스키 Krzysztof Kieślowski / 1990년, 프랑스 칸 / 사진: 안제이 바이다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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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는 또한 '도덕적 불안의 영화 kino moralnego niepokoju'라 불리는 흐름의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경향은 1970~80년대 큰 인기를 끌었고, 폴란드 사회주의 체제의 현실 속에서 등장해 형성되었다. 이들 작품은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과 병폐, 그리고 인간관계의 해체를 날카롭게 드러냈다.
《대리석 인간》(1976)는 한 젊은 기자가 한때 모범 노동자로 추앙받았던 인물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당시 권력과 연결된 인물들은 그의 조사를 방해하려 한다. 《마취 없이 Bez znieczulenia》(1978)는 외국 언론과 인터뷰한 뒤 대학과 언론사에서 자리를 잃게 된 기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휘자 Dyrygent》(1979)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지휘자가 폴란드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해외 경험과 폴란드 현실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은 폴란드 문학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는 수많은 문학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겼으며, 대표작으로 《결혼식 Wesele》(1973), 《약속의 땅 Ziemia obiecana》(1974), 《판 타데우시 Pan Tadeusz》(1999)가 있다. 또한 그는 어려운 역사적 주제에도 과감히 도전했다. 《카틴 Katyń》(2007)은 1939년 9월 소련군에 포로로 잡힌 폴란드 장교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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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코 다카노 Etsuko Takano, 크리스티나 자흐바토비치-바이다 Krystyna Zachwatowicz-Wajda, 안제이 바이다 Andrzej Wajda / 1989년 일본 / 사진: © 2024 안제이 바이다·크리스티나 자흐바토비치 교토-크라쿠프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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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는 폴란드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지만, 곧 유럽 영화계를 이끄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61년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군청의 맥베스 부인 Powiatowa Lady Makbet》을 연출했고, 이듬해에는 프랑스·독일 합작 영화 《스무 살의 사랑 Miłość dwudziestolatków》에 참여했다. 이후 영국 영화 《천국의 문 Bramy raju》(1968), 독일 영화 《빌라도와 그 밖의 사람들 Ein Film für Karfreitag》(1972), 《독일에서의 사랑 Miłość w Niemczech》(1983), 프랑스 영화 《당통 Danton》(1983), 《악령들 Biesy》(1988), 일본 영화 《나스타자 Nastazja》(1994) 등을 연출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 Gérard Depardieu와 일본의 가부키 배우 반도 다마사부로 Bando Tamasaburo를 비롯한 세계적인 배우들과 협업했다. 국제적인 성공은 더 큰 프로젝트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크라쿠프의 '망가 Manggha' 일본예술·기술박물관 Muzeum Sztuki i Techniki Japońskiej Manggha이다. 안제이 바이다는 1987년 수상한 이나모리 재단의 교토상 상금 전액을 박물관 건립 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뒤에도 그는 안제이 세베린 Andrzej Seweryn, 크리스티나 얀다 Krystyna Janda, 보구스와프 린다 Bogusław Linda 등 폴란드 배우들과의 작업을 가장 즐겼다. 특히 다니엘 올브리흐스키 Daniel Olbrychski는 안제이 바이다의 영화 13편에 출연하며 그의 대표적인 협업 파트너로 자리했다.
오스카가 인정한 폴란드 영화의 거장
안제이 바이다는 평생에 걸쳐 100건에 가까운 수상과 후보 지명 기록을 남겼다. 그중 가장 의미 있는 상은 2000년에 받은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이다. 그는 반세기에 걸친 탁월한 영화적 성취를 인정받아 이 상을 받았다. 그에 앞서 《약속의 땅》(1975)과 《철의 인간》(1981)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칸영화제에서는 5차례 수상하고 5차례 후보에 올랐으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2차례 수상과 7차례 후보 지명을 기록했다. 또한 《당통》으로 영국 아카데미상 BAFTA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여기에 수많은 폴란드 국내 영화상과 훈장까지 더하면 그의 수상 경력은 더욱 화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