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에서는 두 세계가 부딪쳤다. 1990년대 말의 한국과, 여전히 회색빛이고 춥고 혼란스러웠던 포스트사회주의 폴란드였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는 작업 과정보다 일상적인 예절과 태도에서 더 자주 드러났다. 파베우 부르칙은 안성기가 나이가 많은 스태프를 만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고, 자신보다 어린 동료들에게도 늘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고 회상한다. 문승욱 역시 안성기가 대스타였음에도 촬영장에서는 '마치 조연 배우처럼' 행동했다고 말한다. 그는 종종 스태프들을 위해 커피를 타 주었고, 누군가 쉴 곳이 필요할 때면 자신의 대기실을 기꺼이 내주기도 했다.
에바 가브릴룩은 안성기와 함께했던 촬영 현장의 시간을 생생히 기억하며 이렇게 회상했다.
"언어 감각이 좋아서 폴란드어 단어들을 곧잘 따라 했고, 정말 잘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누구와 함께 일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지만, 안성기는 매우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원래 그런 성격이었는지, 아니면 낯선 나라에 와 있어 다소 긴장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와 함께 있을 때 느껴지던 분위기가 기억납니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차분함과 고요함이 있었죠."
하지만 촬영 기간 자체는 혼란과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1990년대는 건축이나 사회 분위기 면에서 지금처럼 아름다운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 게다가 촬영 내내 날씨도 추웠죠."
그래서인지 추위와 침묵, 그리고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듯한 소외감은 《이방인》을 이야기할 때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키워드다. 문승욱은 오늘날 이 영화가 무엇보다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 공통의 언어조차 없지만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이방인들의 이야기였다고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분위기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존재했다.
어쩌면 그래서 《이방인》 역시 시간이 흐르며 하나의 이방인 같은 영화가 되었는지 모른다. 극장에서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아 있는 영화 말이다. "폴란드에서는 지나치게 한국적이어서 또 하나의 평범한 무술 영화로 받아들여졌고, 한국에서는 전형적인 유럽 예술영화로 여겨졌습니다. 어둡고, 우울하며, 느리고, 깊이가 부족한 영화로 말이죠." 문승욱은 개봉 이후 이 영화가 맞이한 운명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후 《이방인》은 대중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늘 더 유명한 작품들 사이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폴란드에서는 토룬 Toruń에서 열린 제5회 카메리마주 Camerimage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는데, 같은 섹션에는 《에이리언 4 Alien: Resurrection》,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워싱턴 스퀘어 Washington Square》 같은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TVP 폴로니아 TVP Polonia에서 몇 차례 방영된 뒤 영화는 다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영화는 1998년 2월 14일, 아시아 금융위기 한가운데에서, 김대중 대통령 취임을 며칠 앞두고 개봉했다. 에바 가브릴룩은 훗날 항공사 파업 때문에 서울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것이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관련이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작은 예술영화의 개봉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영화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지나갔다. 그러나 30년 뒤 《이방인》은 뜻밖의 방식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026년 1월 5일,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국민이 사랑한 배우'로 불리던 안성기가 세상을 떠났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그를 기리는 특별전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를 통해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영화들을 다시 조명하기로 했다. 이명세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1994),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2011) 등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작품과 함께 문승욱 감독의 데뷔작 역시 상영작 목록에 포함되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특별전의 큐레이터인 문석은 이렇게 설명한다.
"폴란드에서는 잘 알려진 영화가 아닐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나름의 의미를 지닌 작품입니다. [...] 안성기 배우는 이 영화에 사실상 무보수로 출연했습니다. 한국 예술영화를 지원하고,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방인》은 수십 년 만에 다시 대형 스크린에 걸렸다.
"물론 이 영화는 오래전,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폴란드에서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에 젊은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웃사이더'의 정서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문석 프로그래머는 덧붙인다.
문승욱 감독에게 이번 재상영은 단순한 회고전이나 향수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는 20년 만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 자신이 사실 한 번도 처음 구상했던 이야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훨씬 더 어둡고 잔혹했던 원래의 이야기였다.
"그때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만들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는 오늘날 이렇게 말한다. "작년에 안성기 배우를 만나 그 이야기를 했는데, 무척 흥미로워했습니다. 언젠가 이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면 마지막에 그를 위한 헌사를 넣을 계획입니다."
새로운 버전의 《이방인》은 처음의 구상에 더욱 충실한 작품이 될 예정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놓인다.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가족을 이루려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완전한 무성영화로 만들 겁니다. 대사는 단 한 마디도 없을 거예요. 안성기 배우라면 바로 그런 영화를 원했을 테니까요."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방인》은 여전히 경계에 서 있는 영화로 남아 있다. 폴란드와 한국 사이,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사이,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말이다. 실재하는 작품이라기보다 어딘가를 떠도는 영화 같은 존재에 가깝다.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때때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어느 때는 영화제 회고전의 한 작품으로, 어느 때는 지역 방송의 심야 영화로, 또 어느 때는 오래전 겸손한 한국 배우를 만났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또 다른 30년 뒤, 누군가가 이 영화를 다시 발견하게 될지도.
저자: 마그달레나 니에시비에츠 Magda Nieświec (2026년 5월) | 번역: AL (2026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