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제이 바이다가 그려낸 폴란드 역사
폴란드의 정체성, 유대인 문제, 자국의 신화, 민족적 비극, 그리고 연대노조 '솔리다르노시치' 운동의 열기에 이르기까지, 안제이 바이다의 영화는 폴란드 역사를 가로지르는 여정이다.
그는 폴란드 민족 정체성의 기록자이자 설계자였다. 《재와 다이아몬드 Popiół i diament》는 전후 초기 폴란드를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했고, 《세대 Pokolenie》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청년기로 겪은 세대의 비극적 운명을 처음으로 다루었다. 《로트나 Lotna》에서는 폴란드 낭만주의의 가장 잔혹한 모습을 그려냈고, 《대리석 인간 Człowiek z marmuru》에서는 사회주의 체제를 정면으로 성찰했으며, 《철의 인간 Człowiek z żelaza》에서는 솔리다르노시치 운동이 고조되던 시대의 열기를 생생하게 포착했다.
《재 Popioły》(1965) - 나폴레옹과 폴란드의 신화
"나는 시엔키에비치를 영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제롬스키를 영화화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국민적 합의의 문학도, 모두를 서로 화해시키는 문학도 아니기 때문이다."
안제이 바이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폴란드 영화학파의 마지막 작품인 《재》는 애국심의 본질을 둘러싼 전국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작가와 역사학자,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계기로 애국심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훗날 바이다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에는 시엔키에비치식의 건전한 애국심이 모범으로 여겨졌다. 비판받은 장면과 상황, 대사들이 시엔키에비치가 아니라 제롬스키의 소설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설명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누구도 그것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모차르 미에치스와프 모차르 Mieczysław Moczar와 그의 측근들은 가능한 한 빨리 우리 사회를, 적어도 문화예술계만이라도 수정주의자와 진정한 애국자로 갈라놓고 싶어 했다. 그렇게 나는 수정주의자가 되었고, 그것은 이후 영화를 만드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로트나 Lotna》(1959) - 193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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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트나》(1959) 스틸컷 / 감독: 안제이 바이다 / 사진: Antoni Nurzyński / WFDiF / 영화 스튜디오 카드르 Kadr 소장 / 국립영화자료원-시청각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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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보이치에흐 주크로프스키 Wojciech Żukrowski가 194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아라비아산 암말 로트나는 귀족 목장의 관리인이 폴란드 기병 장교에게 건넨 말로, 바이다의 영화에서는 사라져가는 옛 세계의 종말을 상징한다. 감독은 또한 아르투르 그로트게르 Artur Grottger를 비롯한 고전 화가들의 작품을 풍부하게 인용하며 폴란드 낭만주의 전통을 소환했다.
《로트나》는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전차 부대에 돌격하는 장면으로 영화사에 남았다. 바이다는 이 장면에 폴란드식 영웅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담아냈다. 백마의 상징적 이미지는 이후 《재》의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군마와 《자작나무 숲 Brzezina》에도 다시 등장했으며, 50여 년 뒤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Jerzy Skolimowski의 《특급살인 Essential Killing》에서도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난다.
《카틴 Katyń》(2007) - 1939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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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영화 《카틴》 중 아르투르 지미예프스키 Artur Żmijewski / 사진: Fabryka Obrazu / East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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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dr z filmu "Katyń" w reżyserii Andrzeja Wajdy. Na zdjęciu: Artur Żmijewski., fot. Fabryka Obrazu / East News
바이다의 작품 가운데 이토록 개인적인 영화는 드물다.
"이것은 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카틴 거짓말의 희생자였고, 아버지는 카틴 학살의 희생자였다. 이 주제를 다룬 첫 영화에서 두 사람 모두를 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바이다는 영화잡지 《키노 Kino》에서 타데우시 루벨스키 Tadeusz Lubelski와 나눈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스몰렌스크 인근 숲에서 NKVD에 의해 총살된 폴란드군 장교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귀환을 기다리는 아내들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다. 바이다는 《카틴》을 두고 '폴란드 운명의 파노라마를 완성하는 작품'이라고 말했으며, 이 영화는 2008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프란치셱 크워스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 Wyrok na Franciszka Kłosa》(2000)
스타니스와프 렘벡 Stanisław Rembek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텔레비전 영화 《프란치셱 크워스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에서 바이다는 폴란드 전쟁영화 최초의 반영웅을 탄생시켰다. 그는 작은 마을에서 나치 점령 당국을 위해 일하는 폴란드인 보조경찰의 초상을 그려낸다. 미로스와프 바카 Mirosław Baka의 뛰어난 연기로 완성된 이 인물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점령 당국의 명령을 수행하고, 도덕적 갈등은 술로 잊으려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비극적인 선택의 악순환은 더욱 깊어지고, 결국 폴란드 지하조직은 프란치셱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독일에서의 사랑 Miłość w Niemczech》(1983) - 1940년
1983년 바이다는 폴란드 역사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했고, 서독에서 《독일에서 피어난 사랑》을 연출했다. 주인공은 1939년 강제노동을 위해 독일로 끌려온 폴란드인 노동자와 사랑에 빠진 독일 여성 파울리나(한나 시굴라 Hanna Schygulla)다. 금지된 사랑의 대가로 그녀는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박해를 받으며 살아야 했고 결국 다른 마을로 이주하게 된다.
독일의 거장 감독 폴커 슐뢴도르프 Volker Schlöndorff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바이다는 히틀러주의와 그것이 남긴 반복되는 악몽을 신성시하지 않았다. 어리석음은 보편적이며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토 봉기
《세대 Pokolenie》(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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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1954) 출연진: 리샤르트 코티스 Ryszard Kotys, 타데우시 웜니츠키 Tadeusz Łomnicki,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ński, 우르슐라 모드진스카 Urszula Modrzyńska, 타데우시 얀차르 Tadeusz Janczar / 사진: Ryszard Golc / 영화 스튜디오 카드르 / 국립영화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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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안제이 바이다는 열다섯 살이었다. 그는 제3제국으로 강제노동을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통 만드는 장인의 조수와 자물쇠공, 철도 설계사무소의 제도사로 일했다. 훗날 그는 자신의 데뷔작 《세대》에서 이러한 경험을 되살렸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을 청년기로 겪은 세대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했다. 영화는 바르샤바 외곽에 사는 젊은이들이 독일 점령군에 맞서 싸우고 바르샤바 게토 봉기를 지원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바이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 특유의 계몽적 성격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작품은 여전히 당시의 미학 안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그는 청년투쟁연맹 ZWM을 지지하는 노동계급 출신 청년들과 국내군 Armia Krajowa에 가담한 지식인 계열 지하운동가들 사이의 갈등을 처음으로 선명하게 드러냈다.
《삼손 Samson》(1961) - 1939~1943년
프랑스 배우 세르주 메를랭 Serge Merlin이 연기한 야쿱 골드 Jakub Gold는 1939년 감옥에서 출소한다. 전쟁 중 그는 게토에서 묘지기로 일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게토를 탈출해 이른바 '아리아인 구역'으로 숨어들고, 폴란드인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떠돌게 된다. 그러다 게토 해체가 시작되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려 한다. 카지미에시 브란디스 Kazimierz Brandys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삼손》에서 심리극은 한 방랑자의 비극적 운명을 그려내는 출발점이 된다. 이 작품은 바이다가 데뷔작 《세대》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을 이어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성주간 Wielki Tydzień》(1995) - 1943년 봄
예지 안제예프스키 Jerzy Andrzejewski의 중편소설 《성주간》은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진행 중이던 1943년에 집필되었다. 전후 작가 본인이 검열한 형태로 출간된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인과 유대인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바이다는 유대인을 구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느끼면서도 한 유대인 여성에게는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는 남성을 중심으로 밀도 높은 심리극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이 작품의 영화화를 구상했지만, 반유대주의적 정치 선동으로 인해 계획을 실현하지 못했다. 결국 1995년에 이르러서야 영화화 계획을 다시 추진할 수 있었다.
《코르착 Korczak》(1990) - 1936~1942년
1968년 알렉산데르 포르트 Aleksander Ford는 야누시 코르착 Janusz Korczak을 다룬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8년 3월 이후 반유대주의 선동이 거세지면서 그는 폴란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영화 제작도 무산되었다. (포르트는 이후 1974년 서독에서 《당신은 자유입니다, 코르착 선생 Jest pan wolny, doktorze Korczak》을 연출했다.) 바이다는 이 모든 과정을 직접 지켜보았으며, 이미 완성되어 있던 《코르착》의 세트가 급히 철거되는 장면을 평생 가장 부끄러운 기억 가운데 하나로 회상했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직접 코르착의 삶과 죽음을 영화로 옮겼다. 각본은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Agnieszka Holland가 맡았고, 보이치에흐 프쇼니악 Wojciech Pszoniak이 코르착 역을 연기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끝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의 평론가 다니엘 에이만 Danielle Heymann이 바이다를 반유대주의자이자 역사 왜곡자로 비난하며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무엇이 보이는가? 잔혹해야만 하는, 그래서 잔혹하게 그려진 독일인들과 체념했거나 협력하는 유대인들이다. 바르샤바 게토? 그것은 유대인과 독일인 사이의 문제일 뿐이다. 폴란드인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한다. 상영이 시작될 때부터 느껴지던 당혹감은 점차 불쾌감으로 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거의 메스꺼움을 불러일으키는 에필로그에 이른다. 이송 명령이 내려지고 게토 해체가 시작된다. 다윗의 별이 그려진 깃발 아래 아이들과 코르착 박사는 노래를 부르며 봉인된 화물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린다. 수정주의와 맞닿아 있는 혐오스러운 백일몽의 마지막 장면이다. 어린 희생자들은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죽음의 열차에서 슬로모션으로 걸어 나온다. 트레블링카가 학살된 유대인 아이들을 위한 구원의 장소가 된다는 것인가. 아니다.'
물론 바이다를 반유대주의자로 비난하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코르착》은 오랫동안 '논란의 작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바르샤바 봉기
《카날 Kanał》(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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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영화 《카날》(1956) 스틸컷 / 사진: Polfilm / East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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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dr z filmu "Kanał" w reżyserii Andrzeja Wajdy, 1956., fot. Polflim / East News
바이다는 바르샤바 봉기를 본격적으로 영화화한 첫 감독이었다. 1956년 영화 촬영 당시 바르샤바 시민들은 그에게 실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와 봉기 참가자들이 어떤 맨홀을 통해 하수도로 탈출했는지까지 알려주었다. 당시 관객들은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고결한 애국자들의 영웅담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다가 보여준 것은 영웅적 미화가 제거된 전쟁과 역사에 희생되는 젊은이들의 비극이었다. 당시 영화 행정을 총괄하던 레오나르트 보르코비치 Leonard Borkowicz는 이 프로젝트에 회의적이었지만, 《카날》은 1957년 칸 영화제에 출품되어 수상작이 되었다. 바이다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은종려상은 내 영화를 폴란드 비평가들과 관객들로부터 지켜주었다. 관객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 대부분은 봉기 참가자이거나 바르샤바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하는 이를 애도한 뒤였다. 이제 그들이 보고 싶었던 것은 도덕적·정신적 승리였지, 하수도에서 맞이하는 죽음이 아니었다."
《왕관을 쓴 독수리 반지 Pierścionek z orłem w koronie》(1992) - 1944~1945년
알렉산데르 시치보르-릴스키 Aleksander Ścibor-Rylski의 소설 《말총 반지 Pierścionek z końskiego włosia》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바르샤바 봉기의 마지막 시기를 다룬다. 《왕관을 쓴 독수리 반지 Pierścionek z orłem w koronie》는 바이다에게 국내군에 대한 충성과 공산 정권과의 협력 사이에서 내려야 했던 어려운 선택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군의 영웅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할 수는 없다!"
당시에는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영화 평론가 예지 프와제프스키 Jerzy Płażewski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시나리오 작가가 다소 과장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바이다와 그가 이 작품을 통해 공산주의자들과의 협력이 어떻게 가능해졌는지를 용기 있게 분석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것은 1945년부터 1989년까지 폴란드 사회 전체가 마주해야 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전쟁 직후
《전투 후의 풍경 Krajobraz po bitwie》(1970) -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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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영화 《전투 후의 풍경》(1970)에서 다니엘 올브리흐스키 Daniel Olbrychski / 사진: 영화 스튜디오 페르스펙티바 Perspektywa / 국립영화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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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Olbrychski w filmie "Krajobraz po bitwie" w reżyserii Andrzeja Wajdy, 1970, fot. Studio Filmowe Perspektywa/Filmoteka Narodowa/www.fototeka.fn.org.pl
미군에 의해 해방된 강제수용소에는 여전히 수감자들이 머물고 있다. 바로 이곳에서 젊은 폴란드인 시인 타데우시는 유대인 여성 니나와 사랑에 빠진다. 타데우시 보로프스키 Tadeusz Borowski의 단편소설들을 바탕으로 한 《전투 후의 풍경》은 바이다의 경력에서 가장 대담한 예술적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이 작품은 전쟁으로 파괴된 인간 군상을 그리는 동시에, 인간이 왜 신화를 필요로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 상징적 장면이 바로 수감자들이 그룬발트 전투 기념일을 위해 준비하는 장엄한 공연이다.
또한 많은 이들은 이 영화를 1968년 3월 사태를 우회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해석했다. 당시 반공산주의 야권 인사로 탄압받던 아담 미흐닉 Adam Michnik과 바르바라 토룬칙 Barbara Toruńczyk이 엑스트라로 출연했고, 국가보안기관은 이를 이용해 바이다를 공격하려 했다.
《재와 다이아몬드 Popiół i diament》(1958) - 194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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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영화 《재와 다이아몬드》(1958) 스틸컷 / 사진: Polfilm / East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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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dr z filmu "Popiół i diament" w reżyserii Andrzeja Wajdy, 1958, fot. Polflim / East News
폴란드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자, 전후 폴란드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지은 영화 가운데 하나다. 이 작품은 예지 안제예프스키 Jerzy Andrzejewski의 소설을 불멸의 고전으로 만든 영화화이기도 하다. 바이다는 원작의 서사를 압축하고, 가능한 한 정치적 타협의 흔적을 걷어내고자 했다. 살인의 허무함과 불확실한 미래, 맹세에 대한 충성과 희망에 대한 갈망, 새로운 권력과의 협력, 그리고 자유를 위한 투쟁. 마치엑 헤움니츠키 Maciek Chełmicki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단 하루 동안 폴란드의 과거와 미래는 서로 마주한다.
예지 부이칙 Jerzy Wójcik의 뛰어난 촬영과 즈비그니에프 치불스키 Zbigniew Cybulski, 아담 파블리코프스키 Adam Pawlikowski의 전설적인 연기는 《재와 다이아몬드》를 폴란드 영화학파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과 솔리다르노시치
《대리석 인간 Człowiek z marmuru》(1976) - 1952~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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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는 《대리석 인간》의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14년 동안 관계자들을 설득하며 이 영화가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비판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해야 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설득에 성공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이 영화는 영화사에서 가장 통렬한 공산주의 비판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오래전 잊힌 노동 영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젊은 여성 감독의 이야기는 결국 체제에 대한 환멸을 그려낸다. 당국은 이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 출품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했지만, 프랑스 배급사의 도움으로 《대리석 인간》은 칸 영화제에 진출했다. 비경쟁 부문 상영작이었음에도 영화는 관객과 평단 모두의 찬사를 받았다.
《철의 인간 Człowiek z żelaza》(1981) - 1968~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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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흐 바웬사 Lech Wałęsa / 영화 《철의 인간》(1981) / 감독: 안제이 바이다 / 사진: Jerzy Kośnik / 국립영화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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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h Wałęsa, 1981, "Człowiek z żelaza" w reżyserii Andrzeja Wajdy, fot. Jerzy Kośnik/Filmoteka Narodowa/fototeka.fn.org.pl
솔리다르노시치 파업이 한창이던 시기, 안제이 바이다는 그단스크 조선소를 방문했다. 그때 한 노동자가 그에게 말했다.
"우리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주세요."
바이다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한 번도 주문을 받아 영화를 만든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요청만큼은 외면할 수 없었다."
알렉산데르 시치보르-릴스키 Aleksander Ścibor-Rylski의 각본은 단 6일 만에 완성되었다. 1981년 1월 촬영이 시작되었고, 불과 다섯 달 뒤인 6월에는 이미 파업 중인 공장들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폴란드와 소련의 관영 언론은 이를 '반동적 노조 지도부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 선전물'이라고 비난했다
《당통 Danton》(1982) - 1790년의 파리, 다시 말해 1980년의 그단스크
스타니스와바 프시비셰프스카 Stanisława Przybyszewska의 희곡은 프랑스혁명을 다룬 작품이었다. 바이다는 이를 영화화하기에 앞서 1981년 말 제라르 드파르디외 Gérard Depardieu를 바르샤바로 초청해 솔리다르노시치 운동가들을 직접 만나게 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드파르디외가 혁명의 얼굴을 보기를 원했다. 인간적으로 극도로 지쳐 있고, 크게 뜬 눈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속으로 문득 빠져드는 그런 얼굴 말이다. [...] 내가 만들 새로운 영화 《당통》의 주제를 설명하는 데 있어, 제라르가 자신의 눈으로 본 것보다 더 좋은 말도, 더 훌륭한 연출가도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이 영화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관계를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폴란드에서는 1981년 12월 솔리다르노시치가 불법화된 사건에 대한 정치적 논평으로 받아들여졌다.
《바웬사: 희망의 인간 Wałęsa. Człowiek z nadziei》(2013) - 1980~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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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웬사: 희망의 인간》에서 레흐 바웬사 역을 맡은 로베르트 비엥츠키에비치 Robert Więckiewicz / 사진: Marcin Makowski / MAKUFLY / Akso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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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다는 영화잡지 《키노 Kino》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영화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대리석 인간》의 여성, 《철의 인간》의 여성, 나아가 강철 같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이 지닌 모순을 조화시킬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정과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지면서도, 거대한 정치와 역사적 사건의 한가운데에 선 남편을 지지하는 여성 말이다."
《바웬사: 희망의 인간 Wałęsa. Człowiek z nadziei》는 정치가 한 평범한 폴란드 가정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저자: 바르토시 스타슈친 Bartosz Staszczyszyn (2019년 9월 24일 / 최종 업데이트: 2026년 5월 6일) | 번역: AL (2026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