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질서의 혼란
1980년대 말 체제 전환을 겪었던 폴란드의 영화는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에 차 있었으며 영화 제작자들은 정치적 검열이 드디어 끝난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정치적 변화는 새 영화 생태계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정부 부처에서 관대하게 나눠주던 지원금은 국립 영화 기관을 도와줄 수 있는 데에 그쳤고 국가의 재정 감소는 긴축 정책과 영화에 대한 지원의 감소를 야기시켜 폴란드 영화 산업에 대한 국가 재정의 지원은 유럽 최하위권이 되고 말았다.
정부 기관에서의 혼돈과 부족한 예산은 폴란드 영화의 질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몇 년 동안이나 B급 미국영화를 봐 온 젊은 감독들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어설프게 재현했고, 과거 거장들 중 몇몇은 새로운 현실에 적응 하기가 힘들었다. ‘수녀 요안나. Matka Joanna od Aniołów’와 ‘파라오 Faraon’ 같은 영화를 만들었던 예쥐 카발레로비츄Jerzy Kawalerowicz는 몇 년이나 지난 후, 새 폴란드에서 자신의 일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메가폰을 잡았다. 헨릭 시엔키에비츄 Sienkiewicz의 ‘ 쿼바디스 Quo Vadis’를 만들었으나, 새 영화의 환경 속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제작사의 거부는 경제적 이유가 아닌, 자신에 대한 인신 공격으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부족한 자금으로 인해 폴란드 영화의 거장들이 썼던 영화 언어는 고대적이고도 신경질적인 느낌을 준다. 1989년 이후 옛날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한 폴란드 거장이 카발레로비츄 뿐은 아니다. 예쥐 호프만Jerzy Hofman 감독의 ‘불과 칼로써 Ogniem i mieczem’와 안제이 바이다Andrzej Wajda 감독의 ‘판 타데우쉬 Pan Tadeusz’는 많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는 했지만 이 감독들의 가장 큰 업적에는 속하지 못한다. ‘도덕적 불안의 시네마’ 장르의 가장 중요한 감독인 크쉬슈토프 자누시Krzysztof Zanussi 도 체제 전환 이후 ‘삶은 성적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치명적인 질병 Życie jako śmiertelna choroba przenoszona drogą płciową, 2000’ 에서 단 한 번 자신의 중요한 작품인 ‘일루미나치아 Illuminacja, 1972’와 ‘결정의 구조 Struktury kryształu, 1969’ 의 예술적 수준에 가까운 작업을 했을 뿐이다.
2002년의 법개정으로 폴란드 영화 예술 인스티튜트가 설립되어, 폴란드 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젊은 영화 제작자들을 발굴하며, 해외에 폴란드 영화를 알리기 시작한 것이 폴란드 영화의 새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폴란드 영화를 만들어온 사람들
폴란드 영화의 오랜 역사에서 영화는 세대의 도덕의식과 시대의 소리를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영화계에는 개인의 개성 뿐 아니라 공동 작업을 중요시했다. 물론 바로 한 가운데에 폴란드 영화의 스타 감독들인 카발레로비츄, 스콜리모프스키와 쿠츠가 빛났지만, 폴란드 영화는 스타 개인과 연관되어 생각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ński 와 크쉬슈토프 키에슬롭스키 Krzysztof Kieślowski 이다. 이 두 감독들 역시 공동작업에서 경력을 시작하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감독 스타일을 창조했던 것이다. 이 둘은 유명해졌지만, 폴란드 영화계는 비주류의 좋은 예술가를 그다지 감탄하지 않았다. 그제고슈 크룰리키에비츠 Grzegorz Królikiewicz, 피요트르 슐킨 Piotr Szulkin 이나 안제이 바라인스키 Andrzej Barański 감독 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폴란드에서는 사회적인 명성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폴란드 영화 판에 독특한 개성과 흡인력을 가진 인재들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체제 전환 후 폴란드 영화 판에서 가장 돋보이는 감독은 보이치에흐 스마죠프스키 Wojciech Smarzowski이다. 영화 ‘결혼식 Wesele, 2004’에서 스마죠프스키는 스타니스와프 비스피아인스키 Stanisław Wyspiański가 같은 제목으로 썼던 국민적 희곡을 전복적으로 비틀어 폴란드의 사회에 대한 풍자와 폴란드 국민성의 약한 점을 보여준다. 스마죠프스키의 다른 영화들 역시 정치적 전환 후 폴란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가로서 이 감독의 재능을 입증한다. ‘나쁜 집 Dom zły, 2009’는 소외된 사람과 알콜중독자, 악당들의 이야기와 동시에, 체재 전환 이후의 새 폴란드의 건국 신화가 된 자유노조에 대한 뾰족한 비판을 잊지 않는다.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 ‘장미 Róża, 2011’는 전쟁의 힘들었던 과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폴란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살인 사건에 휘말린 경찰에 대한 음모 스릴러 ‘교통경찰 Drogówka, 2013’에서도 역시 나타난다.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역시, 전혀 다른 성격과 감수성을 가진 안제이 야키모브스키 Andrzej Jakimowski 감독이다. 안졔이 야키모프스키는, 아티스트이며, 성숙한 아웃사이더라 말할 수 있겠다. 그는 현 상태의 사회를 비난하는 반항아인척 하지않고, 일관되게 자신의 영화 세계를 만들며, 관객들을 친밀한 대화로 초대한다.
그의 데뷔작인 ‘눈을 깜빡여 봐 Zmruż oczy, 2003’는 시간이 무엇인지 자신의 딸에게 설명하기 위해 찍었다. 가장 최근작인 ‘이매진 Imagine, 2012’은 자신의 아내에게 바쳤는데, 아내와 감독 스스로에게 상호간의 가까운 감정이란 공통의 세상을 만들고 발견해나가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두 영화 사이에 나온 ‘손기술 Sztuczki, 2007’은 매직 리얼리즘의 문학적 전통에 가까운 영화이다. 현실의 시공간을 넘어선 어디에인가 존재하는 야키모프스키의 영화 세계는 기억과, 인간세상의 자잘한 드라마와 직관과 감정으로 짜여져 있다.
체제 전환 이후의 작가주의적인 폴란드 영화에 대해 말할 때 약간 더 나이가 많은 두 감독들인 얀 야쿱 콜스키Jan Jakub Kolski와 마렉 코테르스키Marek Koterski를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콜스키는 자신의 영화 속에서 마술적이고도 비현실적인 세상을 만들며 어떤 영화에서나 자신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비톨드 곰브로비츄의 ‘포르노그래피 Pornografia, 2003’소설의 각색이나, 동화 이야기 같은 ‘물의 사람, 얀치오Jancio Wodnik, 1993’,’포피엘라비에서의 영화사 Historia kina w Popielawach, 1998’, 전쟁 심리 드라마 ‘창에서 멀리 Daleko od okna, 2000’에서나 감독 자신의 목소리와 작법은 언제나 선명하다.
마렉 코테르스키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는 미적 표현력이다. 그의 자서전 영화는 심리 치료의 일종이다. ‘웃기는 게 아냐Nic śmiesznego, 1995’, ‘정신 병원 Dom wariatów, 1984’, ‘막가는 날 Dzień świra, 2002’, ‘우리는 모두 예수다 Wszyscy jesteśmy Chrystusami, 2006’ 등의 영화는 그를 존경받는 폴란드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세대, 그리고 또 다음 세대의 관객들이 잔인함으로 가득한 코테르스키의 자화상들을 들여다 본다. 코테르스키가 숨김없이 자신의 콤플렉스와 약점, 여성 혐오증, 낭만주의, 순진함, 오만함과 째째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모든 사람 안에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지난 15 년간 폴란드 영화에서 크쥐슈토프 크라우제 Krzysztof Krauze 감독이 없는 폴란드영화는 상상할 수도 없다. 1999 년 그의 영화‘빚 Dług’은 9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다. 그것은 극적 선택을 해야하는 사람의 충격적인 경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5 년후 촬영된 ‘나의 니키포르 Mój Nikifor’는 전혀 다른 감정선을 건드린다. 폴란드의 가장 유명한 민속 예술가에 내밀한 이야기인 동시에, 예술가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크라우제는 최근 폴란드 세대의 가장 진실되고도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들의 감독이다. 영화 ‘구원자 광장 Plac Zbawiciela’에서는 가족 심리극을 통해 사실은 체제에 실망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크라우제의 이야기는 한 가지 장르의 이름을 붙이기 힘들다. 주요 주제도 없으며, 시나리오와 다루고 있는 문제에 따라 감독의 미감 역시 극명하게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라우제는 강한 개성의 감독이며 폴란드의 관객들이 언제나 다음 영화를 기다리게 하는 감독 중 하나이다. 2013년에는 폴란드의 집시 시인이며 가수였던 브로니스와프 바이스 Bronisława Wajs의 일생을 다룬 ‘파푸샤 Papusza’가 개봉 되었다.
폴란드의 여성 영화
폴란드 영화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남자들이긴 해도, 21 세기부터는 폴란드 영화에 대한 여성 감독들의 영향력이 커졌다. 폴란드 영화의 대표적인 여성감독으로는 아그니에슈카 홀란드Agnieszka Holland, 도로타 켄지에쟈프스카Dorota Kędzierzawska, 그리고 마우고쟈타 슈모프스카Małgorzata Szumowska가 있다.
이 중 아그니에슈카 홀란드는 전세계 영화팬의 사랑을 받고 있다. FAMU 체코 영화 학교에서 교육 받은 아그니에슈카 홀란드 감독은 몇 년 전 세계 영화사에 그녀의 존재를 알렸다. 아그니에슈카 홀란드의 ‘열. 탄환 하나의 이야기 Gorączka, dzieje jednego pocisku’은1981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으며, 그로부터 9년 후 ‘에우로파, 에우로파 Europa Europa’로 오스카상에 후보로 올랐다. 홀란드는 장편영화 ‘세 번째 기적 The Third Miracle’ 과 ‘더 와이어 The Wire’ 라는TV 시리즈를 촬영하면서 미국에서 몇년간 활동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그녀의 가장 큰 성공은 ‘어둠 속의 빛 W ciemności’ 이다. 2012년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 된 이 영화는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 쓴 르부프 출신의 지하 하수구 청소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로타 켄지에쟈프스카는 유럽 영화의 또 다른 뛰어난 여성 감독이다. 켄지아쟈프스카의 겸손하면서도 소박한 영화는 애정과 친밀감을 찾는 외로운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초상 속에서 켄지아쟈프스카는 감동적인 심리 드라마를 묘사한다. 이중 특히 어린이의 심리에 대한 것이 많은데, 켄지아쟈프스카 감독의 ’까마귀들 Wrony, 1994’, ‘아무것도 아닌 것 Nic,1998’, ‘더 나은 내일 Jutro będzie lepiej, 2010’ 등은 모두 어린 시절에 대한 영화이다. 이 중 ‘더 나은 내일’로 2011년 베를리날레에서 평화상과 도이치 킨더힐프스베르크 Deutsches Kinderhilfswerk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마우고자타 슈모프스카 감독 역시 최근 가장 흥미로운 여성 감독 중 하나이다. ‘행복한 사람 Szczęśliwy człowiek, 2000’ 이란 영화로 데뷔 후 2004년 그의 어머니 도로타 테라코프스카Dorota Terakowska의 ‘그것 Ono’라는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모성과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두려움, 사회적 관습 의해 부과된 역할과 의무의 대한 이야기이다. 슈모프스카 감독의 전환점이 되는 영화는 ‘삶의 서른 세장면33 sceny z życia, 2008’ 인데, 부모의 죽음과 싸우는 젊은 작가의 이 이야기는 슈모프스카 자전적 이야기로 아무런 감정의 방패막 없이, 건조하고도 솔직하게 그려진 내밀한 초상이다. 또한 앞으로의 영화에서 사회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슈모프스카 감독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한데, ‘스폰서링 Sponsoring, 2011’과 ‘...의 이름으로W imię…, 2013’을 통해 학생 매춘과 성직자의 에로틱한 생활 등 사회적 금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번역: 안나 디니에이코 Anna Diniejko, 이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