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와 시인은 폴란드에서 언제나 특별한 지위를 누려왔다. 그러나 마지막 위대한 시인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난 지금, 다양한 매력이 있긴 하나, 독자들과의 소통을 주요 사명으로 하고 있지 않는 현재의 시들도 그런 위치를 누리고 있을까?
2013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Wisława Szymborska – 20세기 말 가장 많이 번역된 폴란드 시인이기도 하다 –의 서거가 세대의 변화를 가장 극명히 나타내는 사건이다. 쉼보르스카의 빈 자리를 – 사실 미워슈 Miłosz의 빈자리이기도 한- 상징적으로나마 이어받을 준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시인은 분명 아담 자가예프스키 Adam Zagajewski일 것이다. 자가예프스키는 몇 년 전부터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그의 위대한 선배들처럼 고전적이고도 명확한, 아폴로적인 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형식들보다는 이러한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겼던 세대들을 대표하는 시인으로는 타데우쉬 루졔비츄 Tadeusz Różewicz를 빼 놓을 수 없다. 존경과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특히 시집 <어머니의 죽음 Matka odchodzi>) 이 미니멀리즘 언어의 대가는 홀로코스트와 전쟁의 트라우마와 20세기 문명의 인간 파괴적 성격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 성향으로 니힐리스트로 불린 적도 있었다. 이 세대의 또 다른 주요한 목소리로는 내밀하고 개인적인 성향의 시를 쓰는 두 명의 여류 시인, 율리아 하르트빅 Julia Hartwig과 크리스티나 미워벤츠카 Krystyna Miłobędzka를 들 수 있다.
1990년대 폴란드 시의 방향을 제시했던 ‘브룰리온 Brulion’ 세대 이후, 지금 폴란드 시는 딱히 주류를 정해서 말할 수 없는, 혼란스럽지만 흥미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젊은 시인들에게 영향력 있는 시인들을 몇 명 뽑아 말하자면, 보흐단 자두라 Bohdan Zadura (힘을 빼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시), 피오트르 솜메르 Piotr Sommer (오해리즘 등의 미국 시의 전통을 폴란드 땅에 이식), 안졔이 소스노프스키 (가장 전위적이고도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모순되게도 가장 영향력이 크고, 화려한 모국어를 구사하는 시인) 등이 있다. 후계자나 비슷한 류의 시인 집단 없이도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독보적인 시인들로는 마르친 시비에틀리츠키 Marcin Świetlicki나 에우게니우슈 트카취쉰-디츠키 Eugeniusza Tkaczyszyn-Dycki를 들 수 있다. 에우게니우슈 트카취쉰-디츠키는 현재 폴란드 시 단의 가장 주목할 만한 시인으로, 잘 알려지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2009년에 시집 <종속과 중독의 노래 Piosenka u zależnościach i uzależnieniach>가 그디니아 상과 니케 상을 받았다). 보다 내밀하고도 어려운,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인기가 덜하기도 한 시인들로는 리샤르드 크리니츠키 Ryszard Krynicki와 에바 립스카 Ewa Lipska가 있다.
현재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는 토마슈 루쥐츠키 Tomasz Różycki, 타데우쉬 돔브로프스키 Tadeusz Dąbrowski, 아담 비에데만 Adam Wiedemann, 요안나 무엘레르 Joanna Mueller, 마르타 포드구르닉 Marta Podgórnik, 로만 호넷 Roman Honet 등이 있다. 더 어린 시인들로는 콘라드 구라 Konrada Góra, 슈체판 코피트 Szczepan Kopyt, 그졔고슈 크비아트코프스키Grzegorz Kwiatkowski등을 들 수 있곘다.
여기에 폴란드 출판 현상에 대해서도 덧붙이자면, 브로츠와프의 문학 사무소 출판사가 Biuro Literackie가 10년 동안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데, 이 시 전문 출판사는 폴란드 내의 시 읽기 확산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픽션
폴란드의 산문은 전통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폴란드 문학은 스탕달이나 발자크, 톨스토이에 대적할만한 걸작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던 사실주의 문학의 전통을 세우지 못했다는 미워슈의 비판은 최근 25년 동안에도 사실이었다. 아무도 이러한 걸작들이 다시 탄생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이 나라에서 위대한 소설 외에 어떤 가치 있는 것들이 쓰여졌는지 살펴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체제 전환 이후의 10년 동안에는 ‘작은 조국mała ojczyzna’ 이라는 주제로 매우 전통적인 어조로 서술하는 장르의 문학이 유행이었다. 그다인스크를 기반으로 한 두 작가, 파베우 후엘레 Paweł Huelle의 <바이서 다비덱 Weiser Dawidek, 1987>과 스테판 흐빈 Stefan Chwin의 <하네만 Hanemann, 1995>, 비에스와프 미실리프스키 Wiesław Myśliwski의 <지평선 Widnokrąg, 1977>등의 작가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지역과 중부유럽의 조국 주제로 말하자면 이들과 가깝지만 이미 역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컨텍스트에 젖어있지 않는 다른 작가들로는 안졔이 스타시욱 Andrzej Stasiuk과 독특한 폴란드적 매직 리얼리즘을 선보이고 있는 올가 토카르츅 Olga Tokarczuk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체제 전환 10년 동안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은 아마도 예쥐 필흐 Jerzy Pilch의 <강한 천사, 2000>로, 알코올 중독자와 인간을 구원하는 사랑의 힘에 대한 이 소설은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13년 후인 현재 영화로 제작되었다 (보이텍 스마죠프스키 Wojtek Smarzowski감독이 만든 <천사>는 2014년 초 극장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
모두의 기대와 일치하지는 않으나, 걸작인 소설이 2002년에 나왔다. <희고 붉은 깃발 아래 폴란드와 러시아 전쟁 Wojna polsko-ruska pod flagą biało-czerwoną>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도로타 마스워프스카 Dorota Masłowska가 19살에 쓴 작품이다. 이 소설은 아마 1989년 이후 폴란드 문학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일 것이다. 마르친 시비에틀리츠키는 ‘이렇게 재미있는 걸 읽다니, 40년 산 보람이 있다.’ 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광고 문구대로 폴란드에서 나온 첫 깡패 소설인 이 책은 언어적 발상과 농담으로 비평가들과 독자들을 모두 놀라게 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마스워프스카의 다음 행보들 역시 이 작가의 희귀한 재능과 일상 언어에 대한 예민한 수집능력을 보여주는데, 문단의 기대를 충족 시킨 것뿐 아니라 계속해서 독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다음 작품으로 힙합 구절 식으로 쓴 책인 <여왕의 공작 Paw Królowej>이 2006년 니케 상을 받았고, 그 후에는 극작으로 눈을 돌려 <폴란드어를 하는 가난한 두 명의 루마니아인들 Dwoje biednych Rumunów mówiących po polsku, 2006>와 <우리 사이는 좋아요 Między nami dobrze jest, 2008>를 발표한 후 최근 <자기, 내가 우리 고양이를 죽였어요 Kochanie, zabiłam nasze koty, 2012>로 다시 소설로 돌아온 참이다.
마스워프스카는 문단에서 폴란드어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경계선을 확장하고 전혀 다른 예술적 저항 정신을 보여줬다는 데에서 폴란드 문학의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희고 붉은 깃발 아래 폴란드와 러시아 전쟁>은 문학의 분야를 각자의 방법으로 확산시키는 새로운 목소리와 많은 흥미로운 데뷔작들을 위한 길을 닦은 것과 다름이 없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이치에흐 쿠쵹 Wojciech Kuczok의 <똥 Gnój, 2003>(학대받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충격적인 소설, 미하우 비트코프스키 Michał Witkowski의 <루비에보 Lubiewo, 2004> (퀴어소설로 사회주의 시대의 게이들의 모험과 일상을 다룸), 야첵 데넬 Jacek Dehnel의 <랄라 Lala, 2006> (손자에게 20세기 역사를 배경으로 한 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실비아 후트닉 Sylwia Chutnik의 <주머니 속 여인인물전 Kieszonkowy atlas Kobiet, 2008> (대도시에서의 빈민 여성들의 이야기)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러한 종류의 소설로 청소년 세대를 묘사하는 야쿱 줄췩 Jakub Żulczyk의 <라디오 아르마겟돈 Radio Armageddon, 2008>도 있다.
논픽션
폴란드 소설의 발전에 저해가 된 요소로 어쩌면 폴란드에서 르뽀 장르가 누리고 있는 높은 위치와 수준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특히 최근에는 폴란드의 르뽀 소설은 수출 상품의 하나로 활발히 번역되고 있다. 르뽀의 아이콘적인 인물로는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Ryszard Kapuściński가 있는데 1990년대에 <황제 Cesarz>, <샤 Szachinszacha>를 발표한 이후, 유명한 <제국 Imerium, 1993>과 <흑단 Heban, 1998>, <헤로도토스와의 여행, 2004>을 발표했다. 카푸시친스키의 서거 몇 년 후에 아르투르 도모스와프스키 Artur Domosławski (그 역시 르뽀 작가이다)가 쓴 카푸시친스키의 전기가 르뽀 소설에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한 픽션이 얼마나 용인되어야 하는 것인지와 공인의 사생활은 얼마나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만 보아도 카푸시친스키가 폴란드에서 어떤 위치를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다. 이 전기는, 폴란드에서는 엄청난 숫자에 속하는 13만 부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카푸시친스키는 멀고도 가까운, 다른 나라에 대한 르뽀를 쓰는 작가들의 수호성인 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작가들로 <오늘 죽음을 그립니다 Dziś narysujemy śmierć>의 보이치에흐 토흐만 Wojciech Tochman, <한 밤의 여행자들 Nocni wędrowcy>의 저자이며, 아프리카에 대해서 쓰는 보이치에흐 야기엘스키 Wojciech Jagielski, 러시아에 대해서 쓰는 야첵 후고-바데르 Jacek Hugo-Bader (작품으로 <백 열 Biała gorączka>이 있다), 체코에 대해서 쓰는 마리우슈 슈취기에우 Mariusz Szczygieł (작품으로 <고틀란드 Gottland>), 터키에 대해서 쓰는 비톨드 샤브워프스키 Witold Szabłowski (작품으로 <살구 마을의 살인자 Zabójca z miasta moreli>), 파레른 섬과 피트케이른 섬에 대해 최근작 <81:1>과 <내일 여왕이 상륙한다 Jutro przypłynie królowa>를 쓴 마르친 바시엘레프스키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고 있다.
폴란드 현지에 대한 르뽀 작품에 대한 해외의 관심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폴란드 국내 독자들의 관심은 높다. 가장 원숙한 작가로는 <하느님보다 먼저 Zdążyć przed Panem Bogiem>과 <그곳에는 이미 강이 없다 Tam już nie ma żadnej rzeki> 를 쓴 한나 크랄 Hanna Krall을 들 수 있겠다. 폴란드 현대 사회를 다루는 작품을 쓰는 작가로는 누구보다도 <신이 보상하실 Bóg zapłać>을 쓴 보이치에프 토흐만, <더 아팠다 Bolało jeszcze bardziej>를 쓴 리디아 오스타워프스카 Lidia Ostałowska, <정류장 옆, 민족의 심장 Serce narodu, koło przystanku>을 쓴 브워지미에슈 노박 Włodzimierz Nowak, <수요일에 생긴 일요일 Niedziela, która zdarzyła się w środę>의 마리우슈 슈취기에우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의 작품은 모두 폴란드 현대 사회에 대한 광대한 지식을 제공한다.
또한 르뽀 작품이 아니지만, 최근 25년 동안 폴란드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인 <이웃들 Sąsiedzi>를 빼먹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학자 얀 토마슈 그로스 Jan Tomasz Grosss는 예드바브네 Jedwabne라는 작은 유대 도시에서의 폴란드 인의 양민 학살을 상세히 다루었다.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로 출판된 안나 비콘트 Anna Bikont의 <예드바브네에서 온 우리들 My z Jedwabnego>는 타데우슈 스워보지아넥 Tadeusz Słobodzianek 의 화제가 된 연극 <우리 반 Nasza klasa>의 바탕이 되었다.
저자: 미코와이 글린스키 Mikołaj Gliński
번역: 이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