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에서 베네치아, 광주까지 이어지는 폴란드 시각예술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이어지는 비엔날레의 장에서 폴란드 예술가들은 몰타, 베네치아, 광주를 오가며 동시대 예술의 확장된 지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몰타 비엔날레의 역사는 불과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24년 《하얀 바다 위의 올리브 숲 Gaje oliwne nad Morzem Białym》을 주제로 첫 번째 비엔날레가 개최되었습니다. 폴란드 파빌리온에서는 성 요한과 살로메의 성서적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소개되었습니다. 한편 특별전 《지중해의 모계 아카이브 Matri-Archiwum Morza Śródziemnego》에서는 비올레타 쿨레프스카 아키엘 Wioletta Kulewska Akyel의 설치작품 《그로타 Grotta》가 전시되었습니다. 천연 직물로 만든 붉은색과 갈색 계열의 텐트 내부에는 안료와 과슈로 그려진 여성의 신체와 생명력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폴란드 예술가들은 올해에도 다시 몰타를 찾았습니다. 제2회 몰타 비엔날레의 폴란드 파빌리온은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이 비엘스코비아와 BWA 현대미술관, 주발레타 폴란드대사관, 그리고 2026년 폴란드 문화수도인 비엘스코비아와와 협력해 탄생하였습니다. 작가 베로니카 잘레프스카 Weronika Zalewska와 큐레이터 아다 피에카르스카 Ada Piekarska는 영상 프로젝트 《망설임의 아카이브 Archiwum wahań》를 선보였습니다. 두 편의 영상은 폴란드 체제 전환기를 출발점으로 삼아 기억과 지식이 형성되는 방식에 대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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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잘레프스카의 영상 설치 작품 《망설임의 아카이브》 / 큐레이터: 아다 피에카르스카 / 2026년 몰타 비엔날레 폴란드 파빌리온 / 사진: Jakub Celej / IAM
첫 번째 영상은 1990년대 퀴즈쇼를 연상시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TV를 보았던 작가 자신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향수를 담고 있습니다. 영상 속 퀴즈 참가자들은 젊은 사업가, 작은 도시의 사서, 노동자 등 각 사회 집단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진행자의 질문에 답하며 급격히 변화하던 시대를 살아가던 폴란드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드러냅니다. 작가는 퀴즈쇼를 따라가는 과정을 통해 오락 프로그램 특유의 단순화와 과장이라는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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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잘레프스카의 영상 설치 작품 《망설임의 아카이브》 / 큐레이터: 아다 피에카르스카 / 2026년 몰타 비엔날레 폴란드 파빌리온 / 사진: Jakub Celej / IAM
반면 두 번째 영상은 꿈결 같은 분위기의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순간, 식사를 나누는 모습, 자연과 대지를 담은 풍경 위에 추상적인 글리치 애니메이션이 더해집니다. 퀴즈쇼와는 전혀 다른 형식인 이 작품은 침묵과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며, 모든 질문이 즉각적인 답을 요구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오락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영상입니다.
《망설임의 아카이브》는 오늘날의 다양한 지식 전달 방식이 우리의 세계 인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인간 경험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음을 보여줍니다.
비엔날레에서는 오메나아트 재단 OmenaArt Foundation이 기획한 특별관 《재정의하다: 폴란드-가나 직물 서사 Redefining. Polish-Ghanaian Textile Narratives》도 함께 선보였고, 몰타 비엔날레 2026 최우수 파빌리온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나탈리아 브래드버리가 큐레이팅한 전시에서 마르타 나돌레, 엘리자 프로슈추크, 에르네스티나 만사 도쿠는 폴란드와 가나의 문화를 직물 설치 작업 속에 엮어낸 대형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베네치아 - 수어와 혹등고래의 노래
베네치아와 예술의 인연은 100년이 넘습니다. 1895년 처음 개최된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폴란드는 1932년 처음 참가하였습니다. 이때 현재의 폴란드 파빌리온 건물이 세워졌으며, 모더니즘 양식의 전시장 단지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는 바르샤바 자헹타 국립현대미술관이 폴란드 파빌리온의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폴란드 파빌리온은 보그나 부르스카와 다니엘 코토프스키가 공동 제작한 시청각 프로젝트 《물의 언어 Języki z wody》를 선보였습니다. 청인과 농인이 함께 활동하는 실험적 합창단 '움직이는 합창단 Chór w Ruchu'이 참여한 이 작품은 물속과 물 위라는 두 개의 공간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하나의 공연을 담고 있습니다.
《물의 언어》는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물 위에서는 노래를, 물속에서는 몸짓과 수어를 활용해 공연을 이어갑니다. 작품은 청인과 농인을 비롯한 서로 다른 의사소통 방식의 경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경계를 흐립니다. 물속으로 들어간 합창단원들은 말 대신 수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는 기존의 의사소통 질서를 뒤집고 사회 다수를 기준으로 형성된 언어의 위계를 해체합니다. 공연은 한때 멸종 위기에 놓였던 혹등고래의 노래, 그린란드 원주민의 신화, 그리고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수어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되었습니다.
《물의 언어》는 시각과 소리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공연입니다. 작품은 착취와 식민화, 그리고 이해 가능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주변부로 밀려나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은유적으로 탐구합니다. 이러한 주변화는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는 혹등고래와 같은 동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농인 공동체에도 적용됩니다. 작품은 지배적인 담론에 의해 쉽게 묻혀버리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의 풍부함, 그리고 그 복잡성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광주 - 변화에 대한 성찰
대한민국에서는 1995년부터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미술행사 가운데 하나인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2023년 처음 참가하였습니다. 당시 폴란드관에서는 《포스트아티스틱 어셈블리 Postartistic Assembly》 프로젝트를 통해 폴란드와 한국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워크숍과 강연, 설치작품이 선보였습니다.
한편 본전시에는 말고자타 미르가타스가 초청되었습니다. 로마 공동체 출신인 그는 조각과 회화를 통해 로마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문제를 꾸준히 다루어왔습니다. 광주에서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받은 천을 활용한 직물 작업을 선보이며, 환경 보호와 로마 공동체의 삶이라는 두 주제를 함께 엮어냈습니다.
2024년에는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이 WRO아트센터와 협력해 《정적쾌락 Przyjemności katastematyczne》 전을 개최하였습니다. 파베우 야니츠키가 기획한 이 전시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의 가장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는《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You must change your life》를 주제로 열릴 예정입니다. 폴란드 파빌리온 전시 《통과의례 Rites of Passage》는 파울리나 올셰프스카가 기획했으며, 광주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품 세계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소설 《흰》의 일부는 바르샤바 레지던시 체류 기간 동안 집필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알리차 비엘라프스카, 아티스트 듀오 인사이드 잡 Inside Job, 안나 자라드니가 참여합니다. 이들은 생태적·정치적·사회적 관점에서 '변화'라는 주제를 탐구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의 거대한 변화를 이들의 작업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으로 다루지 않으며, 변화는 살아 움직이는 현재의 사건으로서 관객 앞에 펼쳐집니다.
비엔날레 기간에는 한강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특별 강연도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9월 5일 개막해 11월 11일까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