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오른 비극: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 연출의 《소년이 온다》
폴란드 연출가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가 폴란드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무대에 올리기로 하자, 한국의 남산예술센터는 이에 적잖은 놀라움을 표했다. 더욱이 《소년이 온다》의 원작 소설 작가 한강이 그동안 자신의 작품의 연극화를 꺼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폴란드 초연을 허락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관심을 모았다.
비극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2020년은 광주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서 대규모 거리 시위와 소요가 벌어졌으며, 그 중심에는 젊은 세대의 한국 남녀들이 있었다. 군이 개입한 유혈 진압으로 최소 165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공식 통계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심각하게 축소되었다고 지적한다. 실제 희생자는 2000명에 달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2019년 10월, 크라쿠프의 헬레나 모드제예프스카 국립 스타리 극장 Narodowy Stary Teatr im. Heleny Modrzejewskiej w Krakowie에서는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 Marcin Wierzchowski 연출의 연극 《소년이 온다 Nadchodzi chłopiec》가 초연되었다. 그는 극작가 다니엘 소우티신스키 Daniel Sołtysiński와 협력해 대본을 구성했으며, 그 전반부는 한강의 소설을 바탕으로, 후반부는 2028년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미래적 상상으로 전개된다.
한 달 뒤, 서울에서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바탕으로 한 한국 초연 무대가 올려졌다. 배요섭이 연출하고 극단 뛰다가 공연에 함께한 《휴먼 푸가》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 비에슈호프스키의 작품이 서사와 대사, 언어화된 감정을 중심에 두었다면, 《휴먼 푸가》는 움직임과 신체성, 음악이 주도하는 극작법, 그리고 오브제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감정의 물리적 체현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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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2019) 공연 스틸컷 / 연출: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 / 사진: Magdy Hueckel / 국립 헬레나 모드제예프스카 스타리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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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와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 안나-마리아 카르치마르스카 Anna-Maria Karczmarska는 연구 방문을 통해 한국 공연을 직접 관람할 기회를 가졌다. 비에슈호프스키는 극단 뛰다가가 제시한 접근 방식이 자기가 만든 《소년이 온다》과는 전혀 달랐다고 말한다.
"그 공연은 정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매우 인상주의적인 작품이었죠. 소설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시적이어서, 한강이 쓰는 문학의 본질에 한층 가까웠습니다. 배우들을 이끄는 방식과 오브제를 사용하는 장면들에서도 놀라운 직관과 감수성을 봤습니다. 배우들이 사물과 하나가 되어 움직이더군요."
카르치마르스카는 이 공연에 대해 "형식과 표현 면에서 매우 정교하고 집중적이며 미니멀한 작품"이라고 평하면서, 한국 체류 당시 자막이 없어 이 공연을 지적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자막이 있는 상태로 이 공연을 다시 보고 싶어요. 물론 그럴 계획도 있었어요. 《휴먼 푸가》가 크라쿠프 스타리 극장에 초청될 예정이었거든요. 크라쿠프 스타리 극장이 서울 남산예술센터와 다시 협력해 그럴 기회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비에슈호프스키의 《소년이 온다》는 광주 거리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의 40주년을 기리기 위해 서울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계획이 무산되었다. 폴란드-한국 교류의 일환으로 《휴먼 푸가》를 크라쿠프 국립 스타리 극장 무대에 올리려던 프로젝트 역시 같은 이유로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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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2019) 공연 스틸컷 / 연출: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 / 사진: Magdy Hueckel / 국립 헬레나 모드제예프스카 스타리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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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연출가는 왜 이 소설을 선택했을까? 더구나 왜 그것을 10년 후 폴란드를 그린 자신만의 서사와 병치하려 했을까?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직관', 그리고 한 유명 온라인 서점의 '추천 알고리즘'이었다. 비에슈호프스키는 부커상 수상작가 한강의 전작 《채식주의자》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소년이 온다》를 구입하기로 했다. 책의 첫 수십 쪽에 등장하는 '체육관'이라는 모티프는 곧 그가 2016년 비아위스톡 인형극 예술학부 학생들과 함께 만든 졸업 작품,《평범한 폴란드인의 죽은 삶들 Pospolite żywoty martwych Polaków》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작품을 연출한 비에슈호프스키는 마르친 콩츠키 Marcin Kącki의 저서 《하얀 힘, 검은 기억 Biała siła, czarna pamięć》에서 영감을 얻어, 점점 심화되는 폴란드 사회의 분열과 그로 인해 상상 속 내전과 형제 간 유혈 사태로 치닫는 상황을 예술적으로 그려냈다. 비에슈호프스키의 말에 따르면, 사회적·정치적 균열을 다루는 것은 당시 자신이 느끼던 분노와 두려움을 예술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뿐입니다. '바리케이드 저편에 있는 너희가 싫다'고 말하거나, 예술을 통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죠. 첫 번째 선택에 더 끌리지만, 저는 언제나 두 번째 길을 고집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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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2019) 공연 스틸컷 / 연출: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 / 사진: Magdy Hueckel / 국립 헬레나 모드제예프스카 스타리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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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비에슈호프스키는 자연스레 비아위스톡에서 공연한 이전 작품을 떠올렸다. "마치 광주에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연출가는 그렇게 회상한다. 그는 당시 광주가 어디에 있는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조금씩 그 이미지를 재구성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연극의 개념을 세우게 된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한강의 소설 속 '소년'의 형상 또한 또 하나의 강렬한 '운율'로 다가왔다. 그것은 2028년 폴란드 내전을 다룬 《평범한 폴란드인의 죽은 삶들》 작품 속 인물을 떠올리게 했다. "비록 서로 다른 내용이지만, 두 이야기는 제 머릿속에서 나란히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에슈호프스키는 이렇게 설명하며, 이 작품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하게 된 '가슴을 울린 결정적 계기'는 소설의 마지막 장, 한강 작가 자신의 목소리였다고 덧붙인다.
소설의 에필로그에서 한강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9년, 아홉 살이던 그는 부모님과 함께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한다. 그들의 집은 세 아들을 둔 교사 부부에게 넘어가고, 1년 뒤 한강은 그 가족의 막내아들이 유혈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비극은 이후 수십 년간 작가를 따라다니는 '죄의식 없는 죄'로 변모한다. 이 모든 인연이 얽히며 비에슈호프스키는 트라우마와 기억의 감정적 층위를 탐구하는, 네 시간에 걸친 최면적인 연극을 완성하게 된다.
"한국적인 것'이든 '폴란드적인 것'이든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요." 무대 디자이너 안나-마리아 카르치마르스카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적 인물과 유령 같은 존재가 공존하는 이 작품이 초국적이면서 실존적인 차원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그는 특히 공연의 폴란드 파트를 위한 무대 디자인에서 이러한 '망령의 분위기'를 강조했다.
"극이 전개되는 아파트는 낡고, 1980~90년대 가구들로 가득 차 있어요. 게다가 폐허 상태죠. 바닥에는 잔해가 흩어져 있고, 화재의 흔적도 보입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그 파괴의 흔적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런 요소들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이중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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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2019) 공연 스틸컷 / 연출: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 / 사진: Magdy Hueckel / 국립 헬레나 모드제예프스카 스타리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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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슈호프스키는 한강으로부터 자신의 소설을 폴란드에서 연극으로 각색하는 데에 동의를 얻기 위해, 연출가는 감정에 호소하는 논리를 담은 긴 서신을 여러 차례 주고받으며 설득했다. 그는 솔직하고 명확하게, 자신이 구상 중인 공연이 '한국 파트'과 '폴란드 파트'으로 구성될 것이며, 후자는 가해자의 시선 또한 포함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비에슈호프스키는 한강의 소설이 광주 학살의 직접적·간접적 피해자들에게 거의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가해자의 관점을 공개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여전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들은 이를 '상대화의 위험'으로 보는데, 저는 그 시선을 이해해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동시에 헬링어의 가족세우기방식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세우기에서는 가족 내에서 상처를 입힌 가해자 또한 그 가족의 일부로 받아들여집니다. 그 과정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의 가족 사이에 화해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죠. 이 이미지는 제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물론 이 개념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걷는 연극
《소년이 온다》는 비에슈호프스키가 선보인 또 하나의 '이동형 연극'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공연은 고정된 무대가 아닌 움직임 속에서 전개되며, 관객들은 '비(非)연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즉, 각 장면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대부분의 장면을 서서 관람하게 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단순한 형식적 선택이 아니라 작품의 몰입과 감정적 체험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동시에 무대 디자이너에게는 큰 도전이기도 하다. 안나-마리아 카르치마르스카는 이런 형태의 공연 작업을 "정적인 객석과 단일 무대에서 진행되는 일반 연극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만큼의 노력이 관객에게 더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고 덧붙인다. "이 공연의 관객으로 있는 게 좋아요. 직접 그 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에슈호프스키는 관객을 이 '걷는 연극'의 체험 현장으로 초대하는 이유에 대해, 공연에서 관객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오랜 고민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관객이 수동적으로 '벨벳 의자'에 앉아 거리를 두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서 작품 속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다.
"1980년과 2028년 사이의 여정을 하나의 정적이고 전통적인 극장 공간 안에서 보여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우리가 마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영혼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영혼들이 각기 다른 장소로 이동하며,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하려 시도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야기의 출발점인 체육관은 한강이 묘사한 광주의 공간이자, 우리가 다루는 폴란드의 이야기 또한 시작되는 곳이기에 그 장소를 배제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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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2019) 공연 스틸컷 / 연출: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 / 사진: Magdy Hueckel / 국립 헬레나 모드제예프스카 스타리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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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슈호프스키는 자신의 연극이 전개되는 공간의 현실적 차원에도 주목한다. 그는 스타리 극장의 무대가 지닌 형식적이고 연극적인 공간성이,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언제든 임시 시신 안치소나 유해 신원 확인 장소로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평소 같으면 비현실적인 상상으로 들릴 이 말이, 전염병 위협이 상존하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는 오히려 섬뜩할 만큼 생생하게 느껴진다. 작품 속 '현실감'을 강화하기 위해 연출가는 '냄새'라는 감각 요소를 더했다. 연극의 첫 장면인 체육관의 신원 확인 장면에서는 끓는 식초의 고약한 냄새가 퍼지며, 관객은 그 불쾌한 공기 속에서 죽음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이어 두 번째로 관객이 체육관에 들어서는 장면, 즉 무대의 배경이 한국에서 폴란드로 옮겨지는 순간에는, 공간 안에 팔로 산토 연기가 은은하게 번진다. 이처럼 연극은 현실적 고통의 밀도와 상징적 해석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한다. 이러한 균형은 의상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체육관에서 시신을 확인하는 장면은 시적이거나 인상주의적인 방식이 아닌, 극도로 사실적인 연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무대에 놓인 희생자들의 '시신'은 실제 배우가 아닌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의상들이다. 무대·의상 디자이너 안나-마리아 카르치마르스카는 이 의상들이 모두 철저히 고증된 것임을 강조한다.
"1970~80년대의 옷들을 준비했습니다. 광주 항쟁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이런 옷을 입었을 겁니다."
《소년이 온다》는 역사와 트라우마, 사실과 감정이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녹아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마르첼리나 오바르스카 Marcelina Obarska (2020년 5월) | 번역: AL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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