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초콜릿의 맛있는 역사
치오콜라타, 초쿨라다, 초콜타, 치쿨라타 – 다양한 이름을 거쳐 오늘날 '체콜라다'로 불리게 된 폴란드 초콜릿!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달콤한 디저트인 초콜릿의 폴란드 역사를 소개한다.
18세기 유럽과 폴란드에서 마시는 초콜릿은 차와 커피 다음으로 새로운 문화와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차와 커피가 처음 그랬듯 초콜릿 또한 쓴맛을 좋아하지 않는 폴란드인들에게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기호품이었다. 심지어 초콜릿은 사람이 먹는 음료가 아닌 돼지가 먹는 음료이고, 맛이 역겹다는 말까지 나오곤 했다. 하지만 초콜릿에 사탕수수 원당, 계피, 아니스 씨를 넣어 따뜻하게 먹기 시작하면서 폴란드인들의 악평은 호평으로 기울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진하고 끈적한 어두운 색의 초콜릿이 악마의 음료일 것이라고 의심했고, 부활절 전 금식을 하는 사순절 기간 초콜릿을 먹어도 되는 건지 논의가 오갔다. 이는 초콜릿이 사람을 흥분시키고 과잉 행동을 유도하여 필요 이상으로 수다스럽게 만들기도 했고,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 욕구를 폭발시켜 정절마저 잃게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보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교황은 아무리 물과 함께 마신다고 할지라도 초콜릿을 섭취하는 행위 자체가 금식을 깨트릴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문화의 혁명은 막을 수 없었고, 시간이 흐르며 이 향긋한 음료는 유럽 엘리트 사이에서 유행하는 기호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초콜릿은 사람을 자극하고 기분을 좋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이유로 사람들의 의심을 사기도 했다.
마리시엔카여, 치오콜라타를 보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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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카시미르 소비에스카 승마 초상화 (1670)⟫ / 무명 에술가 / 사진: 빌라누프 얀3세 궁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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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이 비스와강 유역으로 전파된 것은 17세기 중반이다. 1665년 7월 25일 얀 3세 소비에스키 Jan III Sobieski 왕은 아내인 마리시엔카 Marysieńka에게 '치오콜라타 ciokolata'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쓰기도 한다.
"마리시엔카여, 치오콜라타가 있다면 좀 보내주겠는가? 작은 주전자 또한 필요하네. 우선 드 누아예 des Noyer가 가지고 있는 걸 보내주고 그에게는 새로운 주전자를 사주시게. 그리고 휘저을 수 있는 막대기 또한 필요하다네."
주전자와 막대기는 17세기 초콜릿을 만드는 데 사용하던 도구였을 것이다. 즉, 특별한 나무 막대기는 몰리니요 molinillo라 불리던 도구였을 것이고, 주전자는 뚜껑에 몰리니요가 들어갈 구멍이 나있는 쇼콜라티에르 chocolatière라는 도구였을 것이다.
초콜릿 전용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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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있는 초콜릿 주전자 / 독일 마이센 / 1750-1760년 경 제작 추정 / 얀 3세 소비에스키 빌라누프 궁전 박물관 기증품 / 기증: Robyg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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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르면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 August II Mocny (1670-1733)와 폴란드의 마지막 왕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 Stanisław August Poniatowski (1732-1798)는 초콜릿을 매우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커피와 차를 마시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초콜릿을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행사로 여겨졌고, 이 특별한 음료를 위해서는 어울리는 전용 도구가 필요했다. 18세기 당시 '치쿨라타 czykulata'로 불리던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전용 파양스와 포슬린 소재의 '파푸리 fafury'와 '포르치넬레 porcynele' 도자기를 사용했고, 초콜릿을 위한 주전자, 컵, 숟가락, 밀크저그, 거름망, 쟁반, 설탕볼 등이 만들어졌다.
보통 설탕은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한 상자에 따로 담아 보관해야 했는데, 이러한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설탕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신성한 초콜릿의 맛은 사람들을 강하게 유혹했고, 18세기 여행자의 짐 목록이 적힌 기록에서는 주전자, 쇼콜라티에르, 커피 주전자, 설탕볼과 뚜껑, 집게 등이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간단한 초콜릿 레시피 '초쿨라다 프로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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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Beela 에서 제작한 최고급 바닐라 토리노 초콜릿 / 1801-1900 / 사진: 디지털 도서관 폴로나 Po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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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공정이 기계화되기 전, 초콜릿이라는 신성한 음료를 준비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성직자이자 자연과학자인 얀 크시슈토프 클루크 Jan Krzysztof Kluk (1739-1796)가 기록한 간단한 초콜릿 레시피 '초쿨라다 프로스타 czokulada prosta'가 바로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이다.
우선 팬에 카카오콩을 넣고 저어준다. 수분과 유분을 유지하고 태우지 않게 주의하며 볶아준다. 그다음 껍질을 벗기고 분쇄해 준다. 하지만 이것은 몹시도 복잡한 초콜릿 만드는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 초콜릿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카카오콩에 으깬 설탕을 넣고 절구로 갈아줘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뜨거운 석탄에 올려 달군 돌을 사용하는 것이다. 카카오콩과 설탕 혼합물이 버터처럼 부드러운 크림 제형이 될 때까지 계속 갈아준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초콜릿에 꼭 필요한 유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에 절구와 돌의 온도를 너무 높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완성된 카카오 매스는 얇은 틴 박스 모양의 특수 몰드에 넣어 식혀주고, 식은 카카오 매스를 몰드에서 꺼내면 초콜릿이 완성된다.
초콜릿에는 풍미를 더해주는 다양한 재료가 추가되었다. 달콤하게 구워낸 아몬드가 들어간 초콜릿은 건강에 좋다고 여겨졌고, 다양한 향신료, 시나몬 또는 바닐라빈 등을 넣은 향긋한 초콜릿도 만들어졌다. 초콜릿은 와인 또는 우유와 함께 조리되기도 했는데, 마시는 초콜릿은 카카오 매스로 만들어졌다. 18세기 레시피에 따르면 '초콜릿 크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밤새 물에 담가 놓은 바 모양 초콜릿 6개에 우유를 넣어 조리하고, 맛과 색을 내기 위해 밀가루와 수제 갈색 캐러멜을 넣어 마무리했다.
가정용 초콜릿
⟪고대 폴란드 요리 레시피. 16-18세기의 흩어진 레시피⟫ 표지 / 편집: 야로스와프 두마노프스키 Jarosław Dumanowski, 도로타 디아스-레반도프스카 Dorota Dias-Lewandowska, 마르타 시코르스카 Marta Sikorska / 2016년 바르샤바
18세기 초콜릿은 구하기 힘든 사치품이었다. 비싼 가격 탓에 누구나 즐길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것이라도 맛보고 싶어 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정용 초콜릿'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 가공품과 대용 초콜릿, 즉 가짜 초콜릿이 개발되었다. 얀 3세 왕 빌라누프 궁전 박물관에서 2016년 출판한 요리책 ⟪고대 폴란드 요리 레시피. 16-18세기의 흩어진 레시피 모음 Staropolskie przepisy kulinarne. Receptury rozproszone z XVI-XVIII wieków⟫에 수록된 1791년 레시피는 초콜릿을 비롯한 해외 특산품의 수입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초콜릿 없이도 집에서 초콜릿을 마실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한다. 레시피의 저자는 심지어 이 가짜 초콜릿 음료가 신대륙에서 수입된 원료로 만든 초콜릿보다 더 맛이 좋고, 건강하며, 영양가마저 높다고 주장한다. 그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카카오콩 대신 고품질의 밀가루 두 스푼을 주전자 또는 쇼콜라티에르에 넣고 뜨거운 석탄 위에 올린 후, 아무런 액체도 넣지 않은 밀가루가 갈색이 될 때까지 저어준다. 그다음 물 또는 우유 한 컵을 넣고 계속 저어준 다음 계피와 설탕을 넣고 마치 초콜릿을 요리하는 것처럼 계속 끓여준다. 음료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계란 노른자를 넣어 색을 정돈해 준다."
가짜 초콜릿의 재료로 사용된 것은 밀가루뿐만이 아니다. 1796년에 발간된 바르트워미에이 지에콘스키 Bartłomiej Dziekoński (1764-1801)의 저서 ⟪최신 사례, 공식, 경제 계획에 따른 검증된 농업・원예 레시피집 Przepisy rolnictwa i ogrodnictwa najnowszemi przykładami, wzorami i planami ekonomiki objaśnione i potwierdzone⟫에 따르면 린덴나무(피나무) 열매 또한 가짜 초콜릿의 훌륭한 재료가 되었다. 린덴나무 열매 초콜릿은 자양 강장에 좋을 뿐만 아니라 맛 또한 훌륭했다고 전해진다.
사교계 초콜릿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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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수플레 / 사진: Piotr Jedzura /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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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 왕의 전설적인 요리사이자 체계적으로 정리된 요리책을 다수 펴낸 저자인 얀 시틀레르 Jan Szyttler (1763-1850) 또한 초콜릿을 사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남겼다. 시틀레르의 초콜릿 우유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초콜릿 1/4파운드를 갈아 작은 팬에 넣고, 곱게 간 설탕 1/4파운드와 뜨거운 크렘 프레슈 1/4파운드를 차례로 넣어준다. 그다음 휘핑한 계란과 계란 노른자를 추가하고, 완성된 혼합물을 거름망으로 걸러 내열 용기에 담고, 오븐에서 중간 불로 가열해 준다."
아몬드 우유로 만든 고대 폴란드 디저트 '블라마 blama (일종의 블랑망제)'에도 초콜릿이 추가되었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를 거쳐 폴란드에 상륙한 이 디저트는 얀 3세 소비에스키 왕이 가장 좋아하던 과자이기도 했다. 시틀레르의 초콜릿 블랑망제 레시피는 너무나도 간단해 오늘날에도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이다.
"초콜릿 1파운드를 갈아 팬에 넣고 색깔이 어두워질 때까지 저으면서 녹여준다. 초콜릿이 녹으면 불을 끄고 아몬드 우유를 넣고 저어준다. 완성된 혼합물을 천으로 걸러내고, 설탕과 아이싱글라스(젤라틴) 2/4를 넣고 잘 섞은 뒤 몰드에 붓고 식혀준다. 식은 블랑망제는 몰드에서 꺼내 완성한다."
폴란드 초콜릿 역사의 전환점: 베델 제국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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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 제품 홍보책 ⟪베델 선물 동화: 착한 어린이를 위한 색칠놀이책 Baśń o Podarkach Wedla: Książeczka do Kolorowania dla Grzecznych Dzieci⟫ / 사진: 디지털 국립도서관 폴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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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초콜릿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젊은 청년이었던 카롤 베델 Karol Wedel (1813-1892)이 바르샤바와 그 인근에 'C. E. Wedel'이라는 상호의 매장과 초콜릿 증기공장을 개업하면서 전환점을 맞게 된다. 처음에는 캐러멜을 생산했지만, 곧 초콜릿 과자 생산으로 범위를 넓히며 대히트를 기록했다. 베델의 가게에서는 각종 질병을 치료한다는 소위 약초 초콜릿을 비롯해 향신료가 첨가된 초콜릿,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바닐라 초콜릿을 판매했다.
1855년 베델은 프랑스 파리에서 마시는 초콜릿을 생산할 수 있는 특수 기계를 도입했다. 카카오콩을 굴리는 작업이 필요했던 힘든 공정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시장에 저렴한 가짜 초콜릿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베델 초콜릿의 성장은 더 가속화되었다. 창립자 카롤 베델의 아들인 에밀 베델 Emil Wedel (1841-1919)은 경쟁사 제품과 차별을 두기 위해 이니셜 로고 'E. Wedel'를 제품에 새기기 시작했고, 이 로고는 오늘날까지도 베델을 대표하는 로고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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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 피아세츠키 공장에서 완성된 과자 제품 / 1932년 / 사진: www.audiovis.nac.gov.pl (N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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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결에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전간기 기간(1918-1939) 폴란드의 초콜릿 산업은 계속 확장되었다. 바르샤바의 카미오네크 Kamionek 지역에는 새로운 현대식 초콜릿 공장이 세워졌고, 베델의 초콜릿 제품은 1918년 독립을 되찾은 폴란드 제2공화국의 새로운 국경 밖에서도 사랑받기 시작했다. 베델의 초콜릿 매장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넘어 폴란드 내 다른 도시로 점포를 확장했고, 프랑스 파리를 포함한 해외의 도시에서도 베델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일명 '베델 제국'의 초콜릿 제품은 베델 소유의 특별 항공기로 해외 곳곳에 수송되었고, 영국 런던과 일본 도쿄에서도 판매되었다.
크라쿠프의 피아세츠키 Piasecki, 수하르트 Suchard, 피싱게르 Pischinger 공장(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바벨 Wawel로 개명)은 바르샤바에 본사를 둔 '베델'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 바벨은 품질뿐만 아니라 마케팅에도 중점을 두었는데, 폴란드를 대표하는 유명 건축물과 위인의 일러스트를 패키지 디자인에 사용하거나, '미스 초콜릿' 대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폴란드 설탕・초콜릿 제조업협회에서는 초콜릿을 비롯한 폴란드 제과산업 발전을 지원하고 폴란드 및 신규 해외시장 확보, 기업의 이익 보호를 위해 뜻을 모아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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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에 오픈한 베델 초콜릿 라운지 / 사진: Małgorzata Kujawka /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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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낙관적인 계획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폴란드 초콜릿 시장의 성장은 방해받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공장이 국유화되면서 폴란드 초콜릿 시장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일명 ‘가짜 초콜릿의 시대’가 시작되게 되었다.
저자: 마그달레나 카스프시크-셰브리오 Magdalena Kasprzyk-Chevriaux (2018년 7월 3일 / 최종 업데이트: 2023년 5월 17일) / 번역: AL (202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