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 루토스와프스키 Lutosławski, 셰페르 Schaeffer, 루드닉 Rudnik
폴란드 현대음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잠시만이라도 폴란드의 음악 상황을 돌아봐야 한다. 폴란드 현대음악의 새 세대 작곡가들은 비톨드 루토스와프스키 Witold Lutosławski와 그의 콘트롤된 우연성의 음악을 필두로 사실 폴란드 현대 음악을 만들어 낸 위대한 인물들에게 직접 배우며 자랐다. 콘트롤된 우연성의 음악이란 ‘안전한’ 즉흥 연주의 한 종류인데, 작곡가가 정한 템포 안에서 규정된 음을 연주하는 것이다. 어떤 작곡가들은 (예를 들어 보이치에흐 지에모비트-지흐 Wojciech Ziemowit-Zych 같은 경우) 아예 대놓고 루토스와프스키의 작풍을 인용한다. 특히 ‘'Mille coqs blessés á mort, 2000’같은 작품에서는 노골적으로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책 Livre pour orchestre, 1968’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 거장의 유산에 좀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다른 작곡가들은 자신의 표현 방식을 찾고 있다. 보이텍 블레하슈 Wojtek Blecharz는 솔직히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루토스와프스키에게 배운 대로 작곡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나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폴란드 현대 음악의 또 다른 흐름은 폴란드 라디오의 실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음악들이 재발견 되고 있는 것이다. 브워지미에슈 코토인스키 Włodzimierz Kotoński, 보구스와프 쉐페르 Bogusław Schaeffer, 에우게니우슈 루드닉 Eugeniusz Rudnik, 보흐단 마주렉 Bohdan Mazurek 등의 작곡가들이 오늘날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엄청난 양의 작품들을 남겼던 것이다. 이들의 많은 작품들은 자연스러움과 음악에 대한 공식으로 경직되지 않은 접근 방식으로 듣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실험 스튜디오에서 나온 또 다른 작곡가는 토마슈 시코르스키 Tomasz Sikorski인데, 시코르스키는 유럽 음악에서 미니멀리즘의 시초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극히 제한된 표현만 사용하고도 듣는 이들을 충격에 빠트리는, 시코르스키의 많은 작품들은 불안감과 멜랑콜리로 가득하다. 젊은 작곡가들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인 스와보미르 쿠프챡 Sławomir Kupczak 은 시코르스키에게 ‘창작 I Kreacje I – 토마슈 시코르스키를 생각하며’ 라는 작품을 헌정하였다.
연결고리들 – 펜데레츠키 Penderecki, 메이에르 Meyer, 크라우제 Krauze
20세기의 거장들과 최근의 작곡가들을 잇는 연결고리로 여겨질 만한 작곡가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역시 실험 스튜디오에서 나온, 한동안 소노리즘의 기수로 여겨졌던, 크쉬슈토프 펜데레츠키 Krzysztof Penderecki이다. ‘히로시마 희생자들을 위하여 – 비가, 1960-1961’ 같은 작품은 아직까지도 아방가르드 추종자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펜데레츠키의 최근 작품들은 조성과 화음으로 가득하다. 다음으로 폴란드 음악 씬에서 중요한 작곡가라면 크쉬슈토프 메이에르 Krzysztof Meyer이다. 메이에르는 펜데레츠키의 제자이며 방대한 루토스와프스키 전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메이에르는 14곡이나 되는 현악 사중주를 썼으며 열 댓곡의 협주곡, 그리고 세 곡의 오페라를 썼다. 그 중 스타니스와프 렘의 공상과학소설에 기반한 우주 오페라 ‘싸이버리아드 Cyberiada’는 완성된 지 42년만인 지금에서야 폴란드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반면 폴란드의 콘서트 홀에서 반세기 동안 꾸준히 연주되어 온 현대 작곡가는 지그문트 크라우제 Zygmunt Krauze 이다. 크라우제는 파리의 전자음악 스튜디오인 IRCAM 에 피에르 불레즈의 초대를 받아 가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 현재 크라우제의 주된 영감의 원천은 아시아 음악이다.
젊은 거장들 – 쉬마인스키 Szymański와 미키에틴 Mykietyn
두 명의 젊은 작곡가들인 파베우 쉬마인스키 Paweł Szymański와 파베우 미키에틴 Paweł Mykietyn은 고전주의자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서양음악의 풍부한 전통을 저버리지 않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쉬마인스키는 현대의 아티스트들이 ‘전통을 완전히 버렸을 때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만들 위험이 있고, 반면에 전통을 너무나 의식하면 뻔한 것을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고 한 바 있다. 파베우 쉬마인스키는 전통에서의 인용을 피하며, 뻔한 음악의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쉬마인스키의 작품들은 옛 양식의 자취만을, 위장된 헛된 기대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프렐류드와 푸가, 2000’라는 작품도 있지만, 아무 것도 제목 그대로인 것은 없다. 가장 최근의 작품 중 ‘필락테리움 Phylakterium, 2011’은 폴란드의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콥트 교회의 석판에 기초하여 과거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미키에틴은 미분음조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미분음조은 ‘마치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 사이 여러 건반들이 더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아름다워지기 Ładnienie', 2004’라는 작품은 클라브생과 현악 4중주, 바리톤을 위한 곡이다. 여기서 클라브생은 미분음적으로 쓰이고, 현악기들은 1/4톤 아래로 조율되어 화려한 색채감을 구현한다.
전자음악과 즉흥연주 – 주벨 Zubel, 두흐노프스키 Duchnowski, 쿠프챡 Kupczak
아가타 주벨 Agata Zubel, 체자리 두흐노프스키 Cezary Duchnowski, 파베우 헨드리히 Paweł Hendrich, 스와보미르 쿠프챡 Sławomir Kupczak들의 음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전자음악과 즉흥연주이다. 이들 모두가 작곡 외에 연주도 하고 있다. 주벨과 두흐노프스키는 함께 엘트로 보체 Elttro Voce라는 그룹을 결성하였는데, 아가타 주벨은 전위적 성악을, 체자리 두흐노프스키는 고전적인 악기들을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탐구한다. 두 음악가를 잇는 것은 음악의 색채에 대한 관심과 연주 가능성의 확장에 대한 열망이다. 두흐노프스키, 헨드리히, 쿠프챡은 모두 Phons ek Mechanes, 풀이하자면 ‘기계의 소리’ 라는 이름의 단체에서 만났다. 이들은 스타니스와프 렘의 공상과학 소설 ‘세 명의 전자기사들 Trzy Elektrycerzy’를 바탕으로 함께 오페라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전자 악기의 소리이며, 직접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연주될 소리를 규정할 파라미터를 입력하고, 악기들을 더해 컴퓨터로 만든 소리들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통 쓰는 라이브 일렉트로닉스 live electronics라는 말 대신, 휴먼 일렉트로닉스 human electronics라고 부르고 있다.
주벨은 작품에서 문학적 영감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카스칸도 Cascando, 2007’는 베케트의 구절에 붙인 곡인데, 아가타 주벨 자신이 같은 제목의 음반에 훌륭한 녹음을 남기기도 했다. 사실 이 곡의 진행에는 아가타 주벨 목소리의 무한한 가능성이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곡에서의 한 음 한 음은 모두 시의 내용과 밀접히 연관되어있으며, 마치 베케트의 시처럼, 느린 소멸을 위해 나아간다.
스와보미르 쿠프챡이 자신의 기술적이고 미학적인 아이디어를 표출한 첫 번째 작품은 그의 교향곡 제1번 ‘카팍스 데이 Capax dei (2008-2010)’로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위해 쓴 곡이다. 악기들은 독립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며 점점 더 응축된, 집중되고도 거대한 음향을 만들어낸다. 약간은 루토스와프스키처럼, 연주자들은 언제 끝낼지, 언제 어떤 음을 짧게 할지 스스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스와보미르 쿠프챡의 진짜 분야는 전자음악으로, 가끔은 전자음악의 ‘레트로’인 신디사이저나 테레민을 이용하기도 한다.
두 명의 여성 작곡가인 알렉산드라 그리카 Aleksandra Gryka와 요안나 보즈니 Joanna Woźny는 폴란드 현대 음악에 엽기적인 요소를 더한다. 알렉산드라 그리카는 많은 외국의 코스에 참가한 바 있는데, 유명한 파리의 이르캄에서도 있었다. 그리카의 작품으로는 발레음악 ‘알파 크리오니아 크세 Alpha Kryonia Xe, 2003’과 오페라 ‘세르캄 유 SERCAM YOU, 2006’이 있다. 작품 ‘observerobserver’에서는 전동 드릴로 두개골을 뚫는 소리, 사람의 내장을 움직이는 소리 등을 녹음한 것을 플룻의 폭발적인 음향과 대비시켜 청중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요안나 보즈니는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데, 자브졔 Zabrze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후에 그라츠 Graz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보즈니의 작품은 현대 음악 레코딩으로 이름이 높은 카이로스 Kairos 사에서 음반으로 내고 있다. 보즈니의 음악 언어는 고전적인 기악 구성으로 현대적인 음향을 내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미니멀한 소리를 추구하는 보즈니의 성향상 거칠기는 하지만 동시에 조용하고 너무 힘들지는 않는 소리가 얻어진다.
개념주의적인 경향으로는 야고다 슈미트카 Jagoda Szmytka와 보이텍 블레하슈 Wojtek Blecharz를 들 수 이는데, 점점 더 많은 폴란드 작곡가들이 이런 비전형적이고 비구체적이며 개념주의적인 표현 형식을 찾고 있다. 이들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야고다 슈미트카이다. ‘해피 데프 피플 happy deaf people, 2012’는 듣는 것과 보는 것, 음악 강의, 이 모든 것의 경계에 걸쳐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음악을 경험하는 여러 방법에 대해, 특히 촉각을 통해 경험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전면으로 나오는 것은 세 언어로 발음되는 단어들이고, 음악 자체는 간결하고도 명확한 프레이즈로 제한되어 있다. 오페라 ‘목소리와 손을 위하여, 2013’에서는 현대의 작곡가가 문화 관련 기관들과 사이에서 접하는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슈미트카의 오페라의 관객들은, 어떤 부분이 오페라에 속하는 것인지, 어떤 것이 일상 생활에 속하는 것인지를 구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슈미트카의 작품은 보이텍 블레하슈의 오페라-설치 작품인 ‘트란스크립툼 Transcryptum, 2013’ 앞에서 보여졌는데, 이 오페라는 국립 오페라 건물을 위해 제작된 것인데, 이 건물의 구불구불한 복도와 엘리베이터, 연습실, 세탁실까지 등장한다. 공연을 준비하는 데에는 오페라 극장의 거의 모든 사람이 동원되었다. 전체 리허설 때 세탁실에서는, 청중이 있건 말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 직원이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는데, 과연 이것은 공연의 일부일까? 예술의 형태에 대해서는 감상자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고 블레하슈는 감상자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도구들만 제공하는 것이다.
저자: 필립 레흐 Filip Lech
번역: 이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