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와 경쟁적 활동은 강하게 정치화되었다. 폴란드에서 산악 등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산악 등반은 한동안 러시아와 폴란드 간의 껄끄러운 관계로 위축되어 있었지만, 1960년대 니키타 흐루쇼프 Nikita Khruschev와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Władysław Gomułka의 집권기 들어 양국 관계가 완화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계 개선은 이동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었고, 이전에는 접근이 어려웠던 봉우리와 산맥으로의 길을 열어주었다.
공산 정부는 자국 산악 등반 공동체가 지닌 잠재력을 인식했다. 등반가들의 성과가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지지를 확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자국 등반가들의 성공이 폴란드에 영광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다. 이러한 인식 아래, 정부는 산악 등반과 그 활동 전반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시간이 흐르며 산악 등반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자, 점점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원정을 보조하기 위한 상당한 관료적 체계도 함께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열성적인 산악 등반 지원은 한편으로 아이러니하게 보이기도 한다. 분명 그것은 폴란드에 명성을 안겨주고 국제 무대에 이름을 올리게 했지만, 산악 등반이라는 행위 자체는 본질적으로 공산주의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산악 등반은 개인의 선택과 결단에 기반한 활동이었고, 이는 집단주의라는 공산주의의 이상과 충돌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원정에는 진정으로 해방적인 측면이 존재했다. 산에 들어서는 순간, 이들은 더 이상 상시적인 감시나 국가의 권위주의적 법 질서 아래 놓이지 않았다. 체제의 인식 밖에서, 산은 말 그대로 자유의 오아시스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관료들은 산악 등반이 지닌 이러한 의미를 분석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오직 폴란드가 국제 무대에서 영광을 얻는 일이었다. 그리고 의도했든 아니든, 이 등반가들은 분명히 그 목표를 달성했다.
승리